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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책] 연대의 밥상-이종건 지음
철거현장서 이웃과 연대하며 나눠먹은 밥상 이야기
2022년 08월 12일(금) 21:00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있다. ‘구도심 개발로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을 일컫는 의미다. 낙후된 도심에 새로운 주거지나 상가가 들어서면 원주민은 밀려나게 된다. 범박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구도심은 젠트리피케이션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대의 밥상’이라는 책 제목도 그렇지만 각각의 목차가 주는 강렬함이 만만치 않다. ‘농성장 철문 안쪽에서 굴을 까먹던 어느 겨울밤’, ‘누군가의 속을 달래고 있을 아현동 작은 거인의 잔치국수’, ‘우리는 곱창같이 버려진 것들의 몸부림에 빚을 지고 있다’, ‘외로운 현장에서 보리굴비 밥상까지, 이어지는 연대의 인연’ 등은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중하게 속삭인다.

무엇보다 다음의 문장은 ‘내쫓김을 당하는 자’에 대한 연민을 넘어 공감을 자아낸다. “연대는 타인의 공허함에 웅크린 나를 겹치는 일이다. 스며들어 서로 관계하는 일이고 이 모든 폭력을 내버려두지 않겠다 다짐하는 일이다.”

책의 저자는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세터의 사무국장. 전도사이기도 한 저자는 선교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처음 ‘빈곤’을 접했다. 그는 집을 빼앗기고 생계 터전인 가게를 잃으면서도 농성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밥은 먹었어요?”라고 묻는 가난한 이들의 연대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책에 언급된 젠트리피케이션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묵직하고 아프다.

아현동 잔치국수는 오래된 아현 포차 거리에 있던 어느 국숫집 이야기다. 아현 포차 거리는 40년전만 해도 쓰레기 집하장이었다. 인근 시장에서 리어카로 분식을 팔던 이들이 거리를 청소하며 포차거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규모가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철거를 피할 수 없었다. 어느 새벽 구청 직원과 용역이 강제 집행을 했다. “30년간 자리를 지켜온 포차의 얇은 합판이 포크레인질 한두 번에 모조리 무더진다. 나뒹구는 식기 사이로 늙은 상인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자는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생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의 울음은 이편을 아프게 한다. 저자는 그대로 쫓겨날 수 없었던 상인들과 예배를 드린다. 얼마 후 작은 거인은 임시로 운영하던 포차를 접고 다시 그 동네의 싼 가게를 구해 들어갔다고 한다. ‘그 동네를 잊지 못해 30년 장사하다 하루아침에 민원으로 쫓겨났던 그 마을에서 국수를 삶는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노량진수산시장은 철마다 회를 먹던 기억이 남이 있는 장소다. 지인들과 봄이면 도다리, 여름에는 민어, 가을이면 전어 그리고 겨울이면 방어를 먹었다. 어느 날 저자는 수산시장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이미 여러 차례 용역이 지나가 몇 가게는 집기가 다 부서져 있다”

어느 새벽녘엔 건물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이 모인다. 한 차례 폭력이 지나고 이들은 아침 식사를 하고 가라는 이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다. 상인들은 각자의 집에서 먹을거리를 가져온다. 막회처럼 숭덩숭던 썬 질 좋은 생선들과 살덩이가 제법 들어간 매운탕과 다양한 반찬들이 차려진다. 한마디로 연대의 밥상이다.

대도시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을 대가로 한다. 누구나 단골이었던 가게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떠났을 때 드는 허탈감을 경험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허탈감은 애써 가게를 열고 가꿔왔던 주인의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날 도시의 ‘무슨 무슨 길’로 명명된 명소들은 그만한 상권을 일구기까지의 소상공인들의 피땀이 어려 있다. 거대 자본이 휩쓸고 간 자리, ‘핫플레이스’라는 허울을 한꺼풀 벗기고 나면 삶을 빼앗긴 이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박찬일 요리사는 “침탈의 두려움에도 뜨거운 음식 한 그릇의 미각을 이토록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낙관의 힘이 아니었을까. 단숨에 읽고 나면 그는 아무나 먹을 수 없는 단 한그릇의 음식을 나누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음식이 더 귀하고 맛있게 보이는 아이러니에 빠진다”고 평한다. <롤러코스터·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