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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천 황현의 ‘사람 노릇’-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2022년 08월 12일(금) 00:30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

매천(梅泉) 황현(1855∼1910)의 절명시의 한 부분이다. 황현은 전남 광양군 서석촌에서 태어나 구례로 이사하여 성장하였으며 호는 매천이다.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부패한 정치 현실을 개탄하고 낙향하여 독서에 전념하면서 급변하는 시대 상황과 특히 일제의 침략 음모를 예의 주시하고 낱낱이 비판하고 매국행각을 하는 자들의 부당성을 질타하는 글들을 적어 후세인의 귀감을 삼게 하고자 ‘매천야록(梅泉野錄)’이란 이름으로 남겼다.

그는 1910년 한일합방을 당하자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자책감을 누를 수 없어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생각해보면 그는 조정의 중추적 책임자도 아니고 합병조약과 관련 된 부서의 종사자도 아니다. 다만 부패한 정치와 날로 쇠퇴해가는 국운을 근심하는 올 곧은 선비일 따름이었다.

그러함에도 그는 글 읽는 선비로서, 그리고 충효를 인간의 중심적 가치로 삼고 살아온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실행하고자 고뇌하였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행동으로써 그 의지를 표현하였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어렵기도 하구나”라고 한탄한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45세 나이에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지식인이 보여주어야 할 사람 노릇이 무엇일까, 로 얼마나 많이 고민하였을까? 그는 1905년 을사조약 후 국권회복운동을 도모하고자 망명도 생각하고 의병봉기도 시도하려 했으나 좌절과 한계를 느꼈다. 1910년 끝내 합방이 되고 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통분을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권문세도는 물론이고 양반이네 선비네 하며 거들먹거리던 자들이 많았지만 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당리당락이니 문벌의 이익만을 챙기던 썩은 선비들이 득실거리던 중에도 황매천과 같은 양심 있는 선비에 의해 충의정신과 민족정기가 살아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민족과 사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알고 내 책임으로 통절히 느끼는 정신, 모든 잘못이 자기에 있음을 알고 죽음을 바쳐 참회하는 마음, 이렇게 역사 앞에 책임지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울 수 있게 된다.

로마 천 년의 역사를 지탱한 정신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즉 상류층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 평소 존경과 특권을 누린 만큼 국가가 위급할 때는 가장 앞장서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요 명예로 아는 전통이다. 영국의 이튼 스쿨(Eton School)은 19명이나 되는 영국수상을 배출할 만큼 귀족학교다.

그러나 이 학교의 학생들은 국가가 위급할 때 앞다투어 군에 지원함으로써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그들은 이러한 희생을 당연한 사회적 책임으로 여기고 있다. 한국 전쟁 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연고도 없이 이 땅에서 전사했는데 이들 가운데는 밴 프리트 유엔군 사령관의 아들과 모택동 주석의 외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군의 희생자 가운데 그런 고관들의 자녀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진정한 지도력이란 공을 위한 헌신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