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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의 방향타-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2년 06월 23일(목) 01:00
대학 시절 그들은 전설이었다. 군부 독재가 계속됐던 1980년대 대학에 들어가 민주주의를 외치며 최루탄과 곤봉으로 무장한 백골단과 전경에 화염병과 돌로 맞섰다. 리더들은 학내·외에서 집회를 열어 학생·시민들과 접점을 만들며 성장했다.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겨 경찰의 수배를 받고 붙잡혀 교도소에 가거나 그 과정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었다.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에 들어가거나 농민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전과가 있는 경우는 취업조차 어려워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공사판을 전전했지만,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헌신했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서민으로 살았다.

이러한 386세대(당시 나이가 30대이고 80년대 학번으로 60년대 출생한 세대) 운동권 중 일부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인물들을 수혈하면서부터다. 이들은 당 대표의 후원과 국민의 지지 속에 국회·지방의회 등에 속속 진출했다. 이후 20여 년이 흘러 그들은 ‘586’이 됐다. 물론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치열한 20대를 보낸 모든 운동권들이 정계에 진출했던 것은 아니다. 한정된 기회 속에 두각을 보인 몇몇에게만 돌아간 특별한 혜택이었다. 승승장구한 ‘86 정치인’들은 중진 의원이나 광역·기초단체장 등으로 성장해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가 됐다.

사실 지금 쏟아지고 있는 86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의 기저에는 그들의 흐릿한 정체성, 즉 무엇을 추구하며 정치에 투신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정치를 통해 해법을 찾으며 전진했어야 했던 그들이 특혜와 기득권에 안주하며 어떠한 비전도 보여 주지 못했다. 빈익빈 부익부,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사교육 창궐과 공교육 붕괴, 지나친 사익 추구와 공익 외면 등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 아래 세대로 대체하거나 갑자기 민생을 챙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늦었지만 86 정치인들이 미래 지향하는 바를 새롭게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방향타를 바로 잡을 때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퇴장하는 게 맞다.

/chadol@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