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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의 홍수에서 살아남는 법-송혁기 고려대 교수
2022년 05월 17일(화) 01:00
쥐와 이(蝨)가 서로 자기가 크다고 싸웠는데, 서로 우기기만 할 뿐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가 쥐에게 말했다. “너는 나보다 작으면서 왜 그렇게 우기는 게냐? 우리, 길 가는 사람들의 공론을 한번 들어 볼까?” 쥐가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이 다니는 한길에 죽은 시늉을 하며 벌렁 눕자 이도 그 옆에 누웠다. 길 가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말했다. “와, 엄청 크네! 쥐가 가죽 신발만 하다니. 어이쿠! 이가 보리 항아리만 하구나.” 이가 의기양양해서 쥐에게 따져 물었다. “신발이 크냐, 항아리가 크냐?” 이 말을 들은 쥐는 찍 소리도 못 했고, 결국 승리는 이에게 돌아갔다.

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쥐와 비교될 수는 없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공론을 앞세운 이가 쥐를 이긴 것이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유몽인이 조카 유활의 편지를 받고 보낸 답장에 나온다. 조카는 유몽인의 문장이 매우 뛰어난데 세상의 공론이 그렇지 않아서 관직에서 밀려나게 된 점을 안타깝게 여기며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자 유몽인은 ‘어우야담’의 저자답게 우화 같은 이야기를 한 도막 들려준 뒤 이렇게 말했다. “쥐와 이가 누가 큰지 겨루는 일이며 그에 대한 공론 따위, 나는 귀를 막고 듣지 않은 지 오래다. 너도 전혀 신경 쓸 거 없다.”

누가 문장을 더 잘 짓는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는지, 사람들은 공론에 부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다툼이라는 게 쥐와 이의 다툼처럼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고, 다수의 공론이라는 것 역시 근거가 취약할 뿐이다. 그러니 공론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전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에 연연할 것 없다는 것이다.

공론(公論)은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공정하게 도출한 의견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유몽인이 살던 시대는 공론 정치를 표방한 유교 사회였다. 재상은 물론 왕도 공론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으니 이상적이고 합리적인 정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당쟁이 격화되면서 당파에 따라 공론이 달랐다는 데에 있다. 어느 당파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던 유몽인은 결국 모든 당파로부터 공격당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 공론이란 참으로 취약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민주주의야말로 공론의 정치다. 그런데 인터넷과 각종 매체의 발달로 정보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누구나 쉽게 공론을 들먹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저마다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공론이라며 들고 나온다면, 공론은 공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공론을 주도하던 권위주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공론을 도출하고자 하는 노력은 다방면으로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동시에 개인의 판단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 판단의 근거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으면 누구나 공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공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맞서는 맷집을 키울 필요가 있다. 유몽인은 쥐와 이의 이야기에 이어서 동네 아이들이 호랑이 잡은 이야기를 꺼낸다. 호랑이가 한 아이를 잡아서 물어뜯으려고 입을 벌리는 찰나, 다른 아이들이 큰 몽둥이로 호랑이의 목구멍을 찔러서 죽였다. 아이들이 호랑이 꼬리를 끌고 신나게 가는데 이것을 본 어른이 놀라서 어떻게 호랑이를 잡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잡은 것이 호랑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고는 너무 무서워서 죽은 호랑이를 내팽개친 채 모두 도망가 버렸다.

유몽인은 이 이야기 끝에, 사람들이 수백 년 전 당나라에 유종원이라는 문장가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지금 조선에 유몽인 자신이 있다는 것은 모른다고 한마디 했다. 실제의 호랑이는 두려워하지 않다가 호랑이라는 이름에 오히려 벌벌 떤 아이들처럼, 눈앞에 살아 있는 사람의 가치는 알아보지 못하면서 귀로 전해들은 죽은 사람만 대단한 줄 아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이 정도 자부심이라면 쥐와 이처럼 하찮은 상대들과 누가 큰지 다툴 일도 없고, 이른바 공론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나는 무엇을 갖추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