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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권기환 지음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경쟁률 1만6000대 1…조선 공무원들의 짠내나는 이야기
2022년 05월 14일(토) 08:00
유교 경전인 ‘효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천자에게 직언하는 신하 일곱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제후에게 직언하는 신하가 다섯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는다. 대부에게 직언하는 가신 셋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집안을 잃지 않는다.”

위의 내용은 공직자가 지향해야 할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정책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직자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늘 공직 개편이 단행된다. 그러나 국정 이념과 행정조직이 갖춰졌다 해도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정책을 집행할 수 없다.

왕조시대나 민주주의시대나 공직사회는 정책을 실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조직이다. 물론 조선의 관료는 부정부패와 백성에 군림하는 부정적인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면모일 뿐 백성을 돌보며 왕을 보좌하는 일상은 직장인으로서의 오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공직을 수행했을까. 왕을 보좌했던 조선 공무원들의 삶을 다룬 책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500년 조선왕조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진짜 암행어사,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의 저자 권기환 씨가 저자로, 현재 그는 감사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감사제도 발전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역사 속 공무원의 공직 생활에 흥미가 많다.

조선의 양반은 과거 급제라는 숙명과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었다. 입신양명의 지름길이었다. 과거는 오늘날 5급 공채와 성격이 비슷하다. 3년에 한번 치러졌고 최종 합격자로 33명을 선발했다. 시험 준비 기간만 평균 35년 평균 경쟁률 1만6000대 1이었다. 과거 1등을 장원급제라 하는데 가문의 영광이었다. 지금의 공무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바늘구멍을 뚫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죽첩경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과거에 합격한 이도 있었다. 노비 출신인 반석평이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이 참판 댁 노비였던 그는 배움의 열정이 지극했다. 참판 아들이 공부할 때 귀동냥을 했고 어느 날은 책을 훔쳐보다 들키고 만다. 참판은 그의 학문 수준이 예사롭지 않음을 알고 면천을 해줬고, 더불어 자식이 없는 친척집 양자로까지 보냈다. 이후 반석평은 문과에 급제한다. 실록에 따라 내용이 다소 다르기도 하지만 신분을 초월해 입신양명한 반석평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의 고시가 많은 ‘고시 낭인’을 양산하듯 조선에도 ‘과거 낭인’이 적지 않았다. 대개 7, 8세에 서당 공부를 시작해 20~30년간 공부에 매진해야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다. 500년 조선 역사상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불과 1만5000명에 지나지 않았다.

과거에 합격해도 이후의 과정인 ‘면신례’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일종의 신참 신고식이었는데 온갖 수모를 견뎌야 했다. 더러 가혹행위로 목숨을 잃기도 했을 정도이고 보면 신고식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죽했으면 정약용도 선배들에게 ‘찍힐까봐’ 자신의 행동을 구구절절 해명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평안감사향연도’ 중 ‘부벽루연회도’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도 마지막까지 임기를 마치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70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4명 중 1명꼴로 귀향을 갈 만큼 정년 채우기가 어려웠다. 또한 지금은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 반면 조선시대 때는 더 일찍 출근했다. 조회가 있을 시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평상시에는 묘시(오전 5~7시)에, 겨울에는 진시(오전 7~9시)에 출근했다. 공좌부에 서명을 해야 출근일수가 체크 됐으며 이는 근무 성적 평가와 승진에 반영됐다.

저자는 “일선 현장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없다면 국정은 마비되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인물과 사상사·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