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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성 화백의 그림 '가족'으로 본 ‘가정의 달’ 단상
모든 생명 어우러져 ‘하나된 가족’
2022년 05월 03일(화) 21:35
광주일보 창간 70주년과 가정의 달을 맞아 황영성 화백이 그린 ‘가족’.
한 편의 동화 같다.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알록달록한 꽃들이 화면 가득 펼쳐져 있는 것도 같다. 모양이 제각각인 꽃은 개별자로 존재하면서도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평범한 듯 비범함이 서린 그림은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라는 정교함을 그러안고 있다. 화폭 가득 무수한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어디쯤에 걸쳐 있는 서사는 몽롱하면서도 유쾌하다. 화사하면서도 소박하고 복잡하면서도 단순해 보이는 그림은 그러나 어느 한 갈래로 포섭되지 않는다.

황영성 화백의 그림에서 ‘가족’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족은 생래적이며 원초적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가족에 천착해왔는데 어쩌면 그것에 붙들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철원이다. 전쟁 통에 떠나온 고향은 꿈에서나 밟을 수 있는 망향의 그리움으로 남았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오늘의 시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기술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고향을 잃어버렸다. 현대인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 눈부신 과학과 기술은 고착된 공간으로서의 고향을 허물고 그곳에 고층의 건물과 편리를 끌어들였다. 이기(利己)에 따른 도구적 관계는 ‘공생’이나 ‘더불어 사는 삶’과 같은 당위를 하찮은 수사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다.

황 화백의 그림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소’가 연상된다. 더러 소는 고향으로 치환되고 가족으로 확대되었다. 하얗고 까맣고 붉은 소의 이미지는 순박하면서도 우직함하여 생각만으로도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그러나 두고 온 산천과 가족으로 결부되는 소의 이미지 이면에는 지난한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작가의 운명이 드리워져 있다.

분명한 것은 황 화백의 ‘가족’은 한가지로 범주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가족은 다문화를 초월하는 생명의 공동체다. 화면 속 빛나는 존재들은 저마다 호명을 기다리는 콩나물 교실의 아이들 같아서, 금방이라도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손을 들며 뛰어 나올 것 같다.

그림 오른쪽으로 흰색과 노란색 날개를 편 아빠와 엄마가 보인다. 날개 아래 깃든 세 명의 아이들은 더없이 행복하다. 빨간색과 파란색, 분홍색의 날개를 편 아이들이 그리는 세상은 조금의 경계도 없다. 화폭에는 마을사람들을 비롯해 동물과 새, 물고기도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작품에는 뚜렷한 중심이 없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 중심이며 자유롭게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다만 앙증맞은 호랑이가 자애롭게 누워 시선을 끌 뿐이다. 조금의 사나움도 조금의 호기(豪氣)도 느껴지지 않아, 마치 재롱을 부리는 것 같다.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의 다복한 의미는 그렇게 모든 생명들이 한가지로 어우러지는 모습을 환기한다.

류시화 시인의 ‘인디언 연설문집-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더숲)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오지브웨 족에게는 다음의 창조 설화가 전해온다. 인간과 동물, 식물 등 만물을 창조한 신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새롭게 태어난 존재들은 모두 훌륭한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해 보였다. 저마다 잘났다고 우기는 통에 자칫 서로를 해할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신에게 어디선가 거미가 나타난다. 거미는 자신의 몸에서 실을 뽑아내, 그것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잇는다.

황 화백의 그림은 모든 생명이 가족이라는 끈으로 엮인 ‘그물망’을 상정한다.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성경 속 천국의 모습일는지 모른다. 부유한 자와 빈자, 귀한 자와 낮은 자가 따로 없는 그런 가족 같은 세상 말이다.

올해는 광주일보가 창간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림 윗부분에 ‘광주일보 70주년’이라는 하늘색 글귀가 보인다. 지난 시간 지역민과 함께 웃고 웃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눠왔던 광주일보 역사는 호남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4·19, 5·18 그리고 언론 통폐합, 그 아픔과 상흔을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지역민들의 ‘가족같은 사랑’에 힘입은 바 크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는 말이 있다. 세찬 역류에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광주일보는 100년의 여정을 향해 우직하게 그리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의 항해에도 독자 여러분의 애정어린 질책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글=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황영성 화백

▲전 조선대 부총장 ▲전 광주시립미술관장 ▲황조근정훈장 ▲이인성미술상 ▲금호예술상 ▲제25회 몬테카를로 국제회화제 특별상 ▲뉴욕, 브뤼셀, 파리, 런던 등 국내외 개인전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