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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미술관 공공조형물 1. 보여주기 위한 ‘애물단지’일까 모두를 위한 ‘거리의 미술’일까
[프롤로그]
구도심 문화쉼터 ‘폴리’, 세계에서 가장 큰 ‘희망우체통’…
역사적 상징탑부터 설치미술·벽화까지…광주 197개 조형물
도시미관 개선 위한 전수조사·정기점검 등 체계적 관리 필요
2022년 04월 19일(화) 20:50
지난 2005년 제1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기념해 광주광역시청 광장에 들어서 있는 ‘기원’(The Prayer).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디자인한 작품이지만 도시를 상징하는 브랜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천인의 탑’(광주시 북구 하서로), ‘기원’(The Prayer, 광주시청 앞), ‘빛의 열매’(양림커뮤니센터 앞), ‘광주사람들’(중앙초교)….

광주시민이라면 한번쯤 도심을 걷거나 출·퇴근길에 눈에 띄었을 법한 거리의 예술작품들이다. 대부분 공공시설이나 장소에 설치된 이들 공공조형물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상징탑에서부터 예술가의 손길로 제작된 설치미술, 조각, 벽화 등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예술적 상상력으로 삭막한 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는 가 하면 색다른 볼거리로 관광객들을 불러 들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당수는 전문가의 검토나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졸속으로 건립되거나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는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게다가 지속적인 관리 부족으로 지역사회와 소통하지 못한채 흉물로 방치돼 도시의 미관을 훼손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수완호수공원에 설치된 7m 높이의 ‘희망우체통’. 당시 광산구청이 예산 1억 원을 들여 기네스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으로 인정 받았지만 관리부실로 공공조형물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기자
광주의 대표적인 생태공원인 광산구 수완호수공원은 볼거리가 많다. 요즘 같은 봄철에는 호수를 에워싼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가 하면 바람이 서늘한 가을 밤에는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음악회가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단연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7m 높이의 빨간색 우체동이다. ‘희망우체통’으로 불리는 조형물 무게는 무려 6t이나 된다. 지난 2009년 11월 광산구청이 예산 1억 원을 들여 설치한 뒤 기네스월드 레코드로 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으로 인증을 받았다. 당시 광산구는 “이 우체통이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가 되기 바란다”며 건립 취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광산구는 우체통 내부에 엽서쓰는 공간을 마련해 1년에 한번씩 발송하고 송년행사에 활용해 시민들의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희망우체통’의 봄날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체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부서가 자주 바뀌는 가 하면 이를 브랜드화 하는 행정의 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개통’ 5년만에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시설 관리에만 치중하는 등 행사나 프로그램을 이용한 홍보 마케팅이 미흡한 탓이다. 실제로 우체통을 둘러 보면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안에는 담배꽁초와 전단지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상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예견된 일’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통’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이를 지역의 랜드마크로 키우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슷한 콘셉트의 우체통이 이미 경북 울주군에 설치돼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울주군이 지난 2006년 해맞이 행사의 메인 이벤트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소망 우체통’을 간절곶에 세워 지역을 알리는 상징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소망 우체통’ 보다 크기만 늘려 광산구에 설치한 ‘희망 우체통’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냐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015년 10월 미국 일리노이주 캐시(Casey)에 9,75m 높이의 우체통이 들어서면서 ‘세계 최대 우체통’이란 표현도 옛말이 됐다. ‘세계 최대, 최고, 최장’에 집착하는 스케일 마케팅의 무상함을 되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다.

광주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광주폴리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프로젝트 일환으로 탄생한 폴리는 쇠락한 구 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카드로 수십 억 원을 들여 옛 광주읍성터에 10개를 설치한 이후 3차에 걸쳐 현재 30여 개가 광주 전역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부터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자산이 될 가능성도 인정 받았다. 광주의 거리를 수놓고 있는 30개의 광주폴리는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독보적인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통의 원두막’(장동 교차로), ‘광주사랑방’(아시아문화전당) 등은 장소성을 살려 침체된 도심에 생기를 불어 넣는 문화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광주 중앙초교 인근의 폴리 ‘광주 사람들’은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아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같은 성과에도 일부 폴리는 시민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자인비엔날레 개막일에 맞춰 급조된 탓에 주변 건물이나 시민들의 동선과 충돌하면서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광주 중앙초교의 ‘광주사람들’이나 금남공원 인근 ‘유동성 조절’, 충장로 파출소 앞의 ‘99칸’이 대표적이다.

광주의 대표적인 공공조형물인 ‘기원’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 제 1회 디자인 비엔날레를 기념하기위해 기업체로부터 8억원을 후원받아 광주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높이 16m의 초대형 모빌작 ‘기원’은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빛의 도시 광주를 형상화한 7개의 모빌식 원형 오브제에는 시민 개개인의 염원을 담아냈다. 오브제의 겉피는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게 되는데, 봄은 ‘Stream in the sky’, 여름은 ‘Wing’, 가을은 ‘Dots in the sky’, 마지막 겨울은 ‘Dawn’이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 원통 오브제는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입도록 디자인한 예술가의 의도를 살리지 못한채 1년에 두차례 디자인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전기비용과 계절마다 갈아 입는 외피를 제작하는 데 2500 만원의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한때 철거될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의 전문가들로 부터 ‘디자인의 메카’라는 상징성을 인정받아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세계적인 거장의 분신인 ‘기원’은 그 자체만으로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소성을 지녔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브랜딩이 미흡해 생명력을 잃고 있다.

이처럼 광주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설치한 상당수의 공공조형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조형물의 경우 장기간 관리되지 않아 도심 속 흉물로 전락하는 가 하면 설치 된지 30년 이상된 조형물의 유지보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광주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광주시와 5개 자치구가 관리하고 있는 공공조형물은 197개다. 이 중 시가 관리하고 는 조형물은 21개, 동구 39개, 서구 50개, 남구 13개, 북구 50개, 광산구 23개 등이다. 공공조형물을 설치하기 위해선 관련 조례에 의해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지만 공공조형물 설치를 심의하기 위해 설치한 공공조형물 심의위원회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공공조형물에 대한 정기 점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따라서 도시미관 정비차원에서 공공조형물의 전체적인 전수조사와 함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본 시리즈는 서울, 부산, 제주, 경기도 연천, 포항을 비롯해 공공미술의 메카로 떠오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국내외 현장을 취재할 계획이다.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공공조형물은 시민들의 미적 안목을 높이는 예술작품은 물론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는 랜드마크이기 때문이다.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