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막막한 광부들 “우린 막장에서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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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석탄’ 막막한 광부들 “우린 막장에서 일하고 싶다”
석탄공사노조 화순지부 파업 투표 현장
정부, 생산량 100만t 한도 설정
3년 내 폐광… 총파업 96% 찬성
“탄소중립·탈석탄 세계적 조류
노동자들이 무슨 수로 막겠나
전업지원금마저 줄어들 듯
광부들을 사지로 내몰지 말라”
2022년 02월 13일(일) 20:00
10일 오전 대한석탄공사 화순지부 노조원들이 정부의 석탄 감산 정책에 따른 폐광 반대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10일 총파업을 결정했다. /최현배 기자choi@kwangju.co.kr
“가자, 막장으로. 죽어도 막장에서 죽자!” “정부의 석탄공사 생산종료 저지, 총파업으로 저지하자”

지난 10일 오전 6시 50분 화순군 동면 복암리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탄광 갱도에서 약 500m 떨어진 사무실 앞 광장이 광부들의 외침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머리에는 ‘단결 총파업’이란 글귀가 적힌 붉은 띠를 매고, 상체엔 ‘단결 투쟁’이라는 흰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힌 조끼를 입은 남성 50여 명이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로 뻗으며 정부의 석탄 감산 정책을 규탄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제6차 석탄산업 장기계획에 따라 석탄공사 향후 채탄량이 총 100만t 수준으로 묶이면서 화순탄광 등 전국 3곳의 석탄공사 산하 탄광이 이르면 3년 내 문을 닫게 되자 광부들이 ‘생존권 사수 총파업’ 투쟁에 나선 것이다.

약 10분간의 결의대회가 끝나고 오전 작업조에 속한 50여 명이 사무실 앞 광장 한편에 마련된 투표장으로 줄줄이 이동했다. 석탄공사 노조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한 투표에서 2가지 안건을 조합원 투표에 부쳤다. 정부 생산종료 저지를 위한 총파업 건, 강원 장성·도계, 전남 화순 광업소 동시 폐광 건을 놓고 강원 원주 본사와 3개 광업소에서 전체 노조원 670명에게 찬반 의사를 물었다. 이날 오후 작업조 출근과 곧이어 오후 5시 종료된 투표 결과, 두 안건 모두 조합원 찬성률 96.3%를 얻어 총파업은 가결됐다.

이를 두고 노조 측은 “정부의 일방적인 석탄 감산 정책과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의 요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석탄이 필요 없다면 3~4년 말미를 주고 우리를 서서히 말려 죽이지 말고 차라리 지금 당장 탄광 문을 닫자는 게 우리의 주장”이라고 밝혔다. 광산노동자들이 매몰 사고와 진폐증 등 목숨을 걸고 캐낸 석탄 덕분에 산업화시대 국가 산업과 경제 발전, 서민들의 겨울나기가 가능했는데 기술 발달로 대체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석탄을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는 것을 넘어 정부가 광산노동자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석탄공사 노조는 조합원 투표 결과를 토대로 비상대책위 논의를 거쳐 향후 파업 일정 등 투쟁 대책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석탄공사 노조 측의 총파업 결의를 두고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탄소중립·탈석탄이라는 세계적 조류에 발맞춰 수립되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데다, 지난해 말 국회 국정감사에서조차 석탄생산 감산에 따른 중도 퇴직자 전업지원금 과다지급 등 예산 낭비 지적이 제기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 지적을 받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석탄감산 방침에 더해, 올 초 중간 퇴직자 전업지원금 축소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손병진 석탄공사 노조 화순지부장은 “탈석탄이라는 정부 방침을 저희가 감히 어떻게 거부하겠나. 세계적 흐름을 우리 노조가 어떻게 막아서겠느냐”며 “우리의 주장은 갑작스러운 폐광 말고, 노동자들에게 폐광에 대비할 시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지부장은 “정부의 방침 변화가 없다면 화순 등 전국의 석탄공사 광업소 3곳은 3~4년 뒤 폐쇄된다. 저희 같은 50대 광부는 어떻게든 먹고 살지만, 30~40대 조합원들은 2~3년치 연봉 수준의 전업지원금을 받고 막장에서도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화순광업소 사무실 앞 광장에는 ‘투표권 없는’ 사람들도 노조의 찬반 투표를 물끄러미 지켜봤다. 화순광업소 12개 협력사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이다. 화순군에 따르면 화순광업소가 폐쇄될 경우, 직장을 잃게 되는 이들은 석탄공사 노조원 등 직원 118명과 협력사 직원 196명 등 모두 314명이다.

화순군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화순광업소가 폐쇄될 경우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300여명과 그 가족을 포함하면 1000여명 가까운 주민들의 생계가 막막해 지는 것”이라며 “정부의 탈석탄 정책에는 동의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광산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화순=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

/화순=조성수 기자 cs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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