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독일 뮌헨, 세계 최대 도심 정원…삶이 풍요로워지는 ‘문화 오아시스’
세계의 문화도시를 가다 <1>
‘뮌헨의 몽마르뜨’ 슈바빙 지구
뉴욕 센트럴파크 보다 큰 ‘영국 정원’
고대~현대 미술 스펙트럼 ‘쿤스트아레알’
쇠락한 도시 살린 BMW 자동차 박물관
가로수 사이 높이 17m 공공조형물 압도
2022년 01월 03일(월) 00:30
독일 뮌헨의 슈바빙 지구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영국정원’(375㏊)은 잔디와 호수, 숲, 산책로 등이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341ha) 보다 넓은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심 정원이다. 사진=위키디피아
2022년 임인년(壬寅年)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아시아예술공원, 광주비엔날레재단 전시관, 아시아 디지털아트 아카이빙플랫폼 조성, AMT(미디어아트창의도시 플랫폼) 센터 개관 등 초대형 문화 건축 프로젝트에서부터 일신방직과 전방 부지 개발 사업, 중앙근린공원 특례 사업 등 광주의 미래를 바꿀 대역사(大役事) 들이 숨가쁘게 펼쳐진다. 하지만 자칫 거대한 장밋빛 청사진에 매몰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면 허울뿐인 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 삶을 결정하는 바로미터는 화려한 인프라가 아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들의 경쟁력은 숲·공원·벤치·공공조형물 등 삶의 질을 높이는 공적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뮌헨·베를린·빈·프라하·잘츠부르크·린츠·뉘른베르크 등 살기 좋은 곳으로 불리는 해외도시들의 일상을 통해 문화광주의 미래를 조망한다. <편집자주>

“이제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아스팔트 킨트(아스팔트만 보고 자란 도시의 고향 없는 아이들)라는 단어는 나에게도 쓰일 수 있는 명칭이다.”(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독일 뮌헨의 몽마르뜨로 불리는 슈바빙 지구(이하 슈바빙)을 거닐다 보면 31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수필가이자 번역가인 전혜린(1934~1965)이 오버랩된다. 사실, 전혜린에게 슈바빙은 마음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1955년 부터 1959년까지 이곳에 위치한 뮌헨대에서 작가를 꿈꾸며 유학생활을 했던 그녀는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제로제’(Seerose)와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에서의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누구보다도 슈바빙을 사랑했다. 1966년에 발간된 유고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일약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그녀가 번역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도 덩달아 인기리에 판매되는 등 당시 서점가는 ‘전혜린 신드롬’으로 뜨거웠다.

지난해 가을 기자는 오래전부터 꿈꿨던, 버킷리스트의 하나였던 슈바빙을 찾았다. 뮌헨의 오데온플라츠(Odeonplatz) 지하철 역에서 내려 슈바빙지구로 향하는 여정은 설레임, 그 자체였다. 슈바빙의 주요 도로인 레오폴드 거리는 마치 도심 속 공원을 산책하는 것 처럼 편안하고 쾌적했다.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그 사이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카페와 서점, 갤러리들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했다. 특히 노천카페와 벤치에는 책을 읽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전 작가가 왜 자신을 ’아스팔트 킨트‘로 불렀는지, 그리고 왜 이 곳을 그리워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슈바빙을 상징하는 17m 높이의 공공 조형물 ‘워킹맨’(Walking Man·조나단 브롭스키 작품)
슈바빙의 상징인 개선문(Siegestor)을 지나자 압도적인 스케일의 흰색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가17m에 달하는 이 작품은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조나단 브롭스키(Jonathan Borofsky)가 제작한 ‘걷는 사람’(Walking Man·1995년 작)으로, 주변의 고층건물과 가로수 사이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독일의 유명 보험회사가 지역민들을 위한 공공 조형물로 건립한 이 작품은 젊음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슈바빙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곳에 들어선 이후 뮌헨 시민은 물론 독일 전역에서 거장의 작품을 ‘직관’하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 드는 등 공공조형물의 성공 케이스로 떠올랐다.

슈바빙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소는 시민들의 휴식처인 ‘영국정원’이다. 뮌헨 외곽의 이자르(Isar)강을 따라 20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1790년에 완공된 이 곳은 도심 공원(inner-city park)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보다 규모가 큰 375㏊에 달한다. 잔디와 호수, 숲, 산책로가 조성돼 주말이면 책과 간단한 먹을 거리를 챙겨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뮌헨이 영국의 생활잡지 ‘모노콜’(Monocle)등 유명기관으로 부터 매년 ‘살기 좋은 도시’의 상위에 오르고 있는 데에는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풍부한 공원 시설이 있다. 실제로, 뮌헨에는 올림픽 공원, 베스트파크, 슐라이스하임 궁전, 히어슈가어텐 등 크고 작은 공원과 정원들이 많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거나 조깅을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쿤스트아레알(예술특구)에 자리한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뭐니뭐니해도 문화도시로서의 진가는 ‘쿤스트아레알’(Kunstareal·예술특구)에서 찾을 수 있다. 뮌헨을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이곳은 독보적인 컬렉션과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미술관 10여 개가 들어서 있다. 도시 어디에서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쉽게 닿을 수 있을 만큼 접근성도 뛰어나다.

고대 미술에서 부터 21세기 현대 미술의 컬렉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술관을 ‘한 곳에서’ 둘러 볼 수 있다는 점이 쿤스트아레알의 매력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을 전시하고 있는 클립토테크, 바실리 칸딘스키·프란츠 마르크를 중심으로 한 청기사파의 작품을 소장한 렌바흐하우스, 13세기~18세기의 회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18세기 후반~19세기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덴(Pinakothek der Moderne·이하 모던 피나코테크), 국립고미술박물관, 국립그래픽 아트전시관, 브란트호스트 뮤지엄 등 면면도 화려하다. 피나코테크는 그리스어로 ‘그림 수집관’이라는 의미다.

이들 가운데 ‘피나코테크 3총사’로 불리는 알테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 모던 피나코테크는 문화관광의 필수코스다. 오데온플라츠 지하철 역에서 내려 쿤스트레알쪽으로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모던 피나코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현대미술 전시장 답게 노출콘크리트 기법으로 설계된 모던한 건축미가 시선을 끈다. 미술관 앞 정원에 자리한 UFO 모형의 대형 설치작품 ‘The Futoro Haus’(미래형 주택·마티 수로덴 작)는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

이밖에 도시 외곽의 올림픽 공원에 자리한 BMW 자동차 박물관(BMW Museum)도 빼놓을 수 없다. 1973년 뮌헨 하계 올림픽 폐막 이후 설립된 BMW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글로벌 기업 BMW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각 시대별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다양한 모델들이 미술관의 예술작품처럼 전시돼 있다. 본사 사무실과 공장, 박물관, 문화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BMW 지역은 1960년대까지 제조업 공장 외엔 볼거리가 거의 없었던 뮌헨의 랜드마크가 됐다.

/뮌헨=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