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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화도시를 가다] 덴마크 코펜하겐(하)-도심 속 힐링명소들
벤치·정원·미술관… 소박한 삶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다
100여년 전부터 시민들의 쉼터 ‘코펜하겐 벤치’ 도시 품격 보여줘
왕의 정원 ‘로젠보르크 성’, 파빌리온, 카스텔레 요새 등 힐링 장소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조각 컬렉션·실내연못 인상적
자연·바다·예술 공존 ‘루이지애나 미술관’ 거장 컬렉션 관람객 발길
2023년 03월 19일(일) 19:30
코펜하겐 중심가에서 랑엘리니 해변의 인어공주 동상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카스텔레(Kastellet)요새 전경. 과거 코펜하겐을 방어하기 위해 세운 군사시설이었지만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쉼터가 됐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여행하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클래식한 의자’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초록색 나무와 철제로 디자인된 벤치는 공원에서부터 공항이나 미술관까지 도시 곳곳에 2000여 개가 설치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낸다. 이름하여 ‘코펜하겐 벤치’. 100여 년 전, 시민들의 쉼터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벤치는 이제 디자인 강국의 면모를 보여 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휘게의 발상지이자 세계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코펜하겐의 저력은 벤치나 정원, 미술관에서 느낄 수 있다.

‘왕의 정원’의 코펜하겐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코펜하겐 벤치

‘코펜하겐 벤치’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도심 속 공원이다. 다른 북유럽의 수도처럼 코펜하겐은 도보나 자전거로 웬만한 관광명소는 둘러볼 수 잇을 만큼 아담하다. 그렇다 보니 도보 여행자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 오는 건 바로 편안한 벤치다. 다리가 팍팍해질때쯤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벤치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세련된 디자인과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초록색과의 조합은 코펜하겐의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도심 속 공원에 듬성 듬성 놓여 있는 벤치는 그 자체만으로 예술 작품을 연상케 한다. 풍성한 자태를 자랑하는 숲 사이로 길게 늘어서 있는 벤치를 보면 한폭의 풍경화가 떠오르고 호수나 연못과 이웃해 있는 벤치는 근사한 설치 미술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사람과의 조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여성이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이나 젊은 연인들이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도심 속 궁전’인 로젠보르크성(Rosenborg Slot).
로젠보르크 성

코펜하겐 벤치를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도심 속 궁전인 로젠보르크성(Rosenborg Slot)이다. 도심 속 허파인 ‘왕의 정원’(Kongens Have)에 들어선 이 곳은 르네상스 건축양식으로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궁전이다. 덴마크의 건축가인 베르텔 랑에, 한스 판 스테인빙컬의 설계로 탄생한 로젠보르크성은 디자인 강국의 전통을 엿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건축미를 뽐낸다. 1606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4세 국왕의 여름 궁전으로 건립됐지만 인근에 있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이 불탔을 때나 영국이 코펜하겐을 침공했을 때 임시로 왕궁으로 쓰이는 등 역사의 순간을 함께 해왔다. 성 안에는 과거 왕들이 사용했던 왕관과 다양한 장신구 등이 전시된 박물관이 꾸며져 있어 옛 왕국의 화려한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다. 한해 250만 명이 다녀갈 만큼 덴마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다.

이처럼 로젠보르크성이 시민과 관광객들로 부터 사랑받고 있는 데에는 ‘왕의 정원’을 빼놓을 수 없다. 연중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한 정원과 호수, 독특한 조형미가 인상적인 파빌리온, 인근의 카스텔레(Kastellet) 요새 등은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는 최고의 힐링 장소다. 특히 인어공주 동상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카스텔레는 과거 코펜하겐 시내를 방어했던 별 모양의 요새로 17세기에 지어져 2차 대전까지 사용되다 시민들을 위한 휴식공원으로 변신했다.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

뉴 칼스버그 글립토테크 미술관(이하 글립토테크 미술관)은 코펜하겐 여행의 시발지인 중앙역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세계적인 맥주회사 ‘칼스버그’와 인연이 깊다. 칼스버그 맥주회사 창립자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인 칼 야콥센(Carl Jacobsen·1842~1914)이 설립한 조각 전문 미술관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조각상에서 부터 오귀스트 로댕, 인상주의 회화, 덴마크 황금기의 예술품에 이르기 까지 1만 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글립토테크는 쪼다, 조각하다의 그리스어 ‘글리페인’(glyphein)과 장소를 의미하는 ‘테크(theke)’의 합성어로 지중해 인근의 이집트, 그리스, 고대 조각품들이 미술관의 모태가 됐다. 칼 야콥센은 맥주 제조로 일군 막대한 부의 일부를 조각품을 구입하는 데 할애했다.르네상스 시대의 작품과 근현대 미술품을 선호하는 일부 부호들과 달리 그는 조각품 수집에 공을 들였다. 미술관의 조각 컬렉션은 질적으로도 꽤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고풍스런 분위기가 인상적인 카이 닐센(Kai Nielsen)의 ‘워터 마더’(The Water Mother)의 조각상과 작은 실내 연못으로 꾸며진 ‘겨울정원’은 하이라이트다.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싱그러운 정원은 코펜하겐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오아시스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에 위치한 훔레벡(Humlebæk)은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기차역에서 내려 다시 마을 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할 만큼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컬렉션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100여 만 명이 찾는다. 얼핏 미국의 루이지애나주를 연상케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원래 이 곳에 19세기 양식의 빌라를 지은 땅 소유자가 세 명의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이들의 이름이 모두 ‘루이스’(Louise)였다고 한다. 이후 빌라를 구입한 크누드 젠센(Knud W.Jensen·1916~2000)이 특이한 스토리에 흥미를 느껴 지금의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으로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또다른 매력은 푸른 바다를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속세를 떠난 듯한 평화로운 분위기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스웨덴의 오레선드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푸른 잔디 위에는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분신’이 곳곳에 자리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 막스 에른스트, 알베르토 지코메티, 알렉산더 칼더, 루이스 부르조아, 리차드 세라 등 거장들의 컬렉션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특히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갤러리는 미술관의 ‘아이콘’이다. 갤러리의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정원의 호수와 깡마른 청동 입상의 ‘걸어가는 사람’(Waking man)과의 조화는 압권이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로부터 ‘죽기 전에 한번 가봐야 할 미술관’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다.

/코펜하겐=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