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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가정에만 맡겨 둘 것인가-장필수 제2사회부장 겸 편집부국장간병
2021년 11월 17일(수) 00:00
장필수 제2사회부장 겸 편집부국장간병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스물두 살 청년의 ‘부친 간병 살인’이 논란이 됐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집에서 간병하다 음식을 주지 않아 1주일 만에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청년에게 존속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고의성을 인정해 존속살인죄를 적용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청년이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고의성 인정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라는 논란이 있었다. 유기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년의 아버지는 지난해 9월 뇌출혈로 쓰러져 8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하지만 병원비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지난 4월 23일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라고는 이 청년이 유일했다. 아버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욕창 방지를 위해 두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 주어야 했다. 아들은 24시간 붙어서 간병할 수밖에 없었다. 월세는 밀렸고 가스도 끊겼다. 쌀 사 먹을 돈도 없어 2만 원만 빌려 달라고 삼촌에게 문자를 보낼 정도였다. 청년은 결국 아버지를 1주일간 돌보다 포기했다. 퇴원 2주 만에 아버지는 숨졌다.

공공 시스템 갖춰 비극 막아야

이 사건은 ‘영 케어러’(young carer)로 불리는 청년 간병인에 대한 관심과 함께 과연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가족을 간병하기 위해 꿈과 미래를 포기해야만 하는 영 케어러의 현실. 본인이 알고 신청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복지의 ‘신청주의’ 문제점도 노출했다.

우리 사회에서 ‘간병 살인’은 사흘에 한 번꼴로 벌어진다고 한다. 간병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대다수가 가족이다. 중증 환자에 대한 돌봄 시스템이 부실해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정이라면 오롯이 가족 구성원이 간병이란 짐을 떠안아야 하는 탓이다.

사흘 전에는 담양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40대 가장이 초등학생 아들과 80대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인천에 살면서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10대 아들을 키우던 A씨는 1년 전 형의 사망으로 우울증을 겪는 80대 노모마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고 전날 홀로 사는 광주 어머니 집에 들른 A씨는 어머니와 아들을 태우고 형이 운영했던 업체 인근에서 생을 마감했다.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와 장애가 있는 아들을 돌보는 것이 버겁다는 메시지를 유족들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사건은 지난해 6월 광주에서도 있었다. 20대 발달장애인 아들을 키우던 50대 ‘싱글 맘’ B씨가 주차된 차안에서 아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B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주간보호센터가 폐쇄되면서 집에서 아들을 돌봐왔다. 그러다 아들이 내는 소음 등으로 이웃들의 항의가 잦아지자 고심 끝에 정신병원에 3개월 입원시켰지만 아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몸무게가 10㎏ 이상 줄어들자 죄책감에 퇴원시켰다. 하지만 돌봐줄 복지시설을 찾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족 살해 후 극단적 선택 잇따라

‘간병 살인’이나 ‘돌봄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돌보는 사람의 그릇된 책임감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비난만 할 수도 없다. 비난에 앞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 사회가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복지시스템을 점검하고 제대로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개인이 모여 가정이 되고 가정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 지방자치단체나 국가는 개인과 가정을 돌볼 책임이 있다. 한 가정에서 구성원의 생명권과 복지권을 챙길 수 없다면 지자체나 정부가 나서 공동으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6월 광주 방림동에 문을 연 전국 최초의 ‘최중증 발달장애인 융합돌봄센터’는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광주시가 마련한 복지 지원 체계인데 센터에서 행동치료사 등 전문가들이 발달장애인들을 연중무휴 24시간 돌보는 시스템이다. 이런 시스템이 많이 갖춰질수록 간병·돌봄 살인 같은 안타까운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bungy@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