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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스’와 수영장
2021년 11월 03일(수) 00:00
2년 전 둘러 본 서울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는 개관 초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코로나19로 방문객이 많지 않았지만 알림터, 배움터 등 5개의 시설이 만나는 광장은 예전의 삭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데 군데 들어선 파라솔과 벤치에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2014년 개관 당시만 해도 ‘국적불명의 UFO’라는 비난을 받던 곳이 이젠 누적 방문객 1천만 명을 기록한 디자인 발신지가 된 것이다.

사실, 옛 동대문 운동장부지에 들어선 DDP는 이라크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가 설계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사실 만으로 국제 건축계의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5년 간의 공정을 거친 끝에 모습을 드러낸 DDP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무엇보다 48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건축비와 장소성을 고려하지 않은 난해한 디자인이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2만6000평의 부지에 들어선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의 건축물은 도심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우주선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DDP가 시민들의 문화놀이터로 변신하게 된 데에는 대중적인 콘텐츠와 다양한 편의시설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난 2018년 오스트리아 빈과의 문화교류가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 냈다. 지하 광장을 무대로 그해 여름 펼쳐진 ‘안녕 오스트리아! 안녕 비엔나!’ 행사는 DDP의 변신을 이뤄낸 기폭제가 됐다. 오스트리아의 다양한 예술 공연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DDP 광장에 선보인 빈의 명물 ‘엔지스’(Enzis)가 시민들의 쉼터로 큰 인기를 끈 것이다. 사소한 의자 하나로 달라진 광장의 풍경은 ‘공간의 재구성’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빈의 MQ(Museums Quartier) 광장에 설치된 엔지스는 지난 2002년 유명건축그룹인 PPAG가 공공디자인 일환으로 제작한 플라스틱 의자다. 사다리꼴의 밑변을 뒤집어 높은 듯한 형태는 한 사람이 누울 정도로 길다. 실제로, 지난달 말 취재차 방문한 MQ 광장에는 푸른색의 엔지스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운채 휴식을 취하는 빈 시민들이 많았다. 말이 의자이지 MQ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조형물 같았다. 엔지스는 그 자체가 시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그 순간, 매번 방문할 때 마다 ‘황량한 운동장’ 같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광장이 떠올라 씁쓸했다. 올해로 개관 6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대중과 겉도는 콘텐츠와 운영은 아시아의 문화발전소라는 위상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특히 난해한 건물의 동선과 썰렁하기 짝이 없는 광장은 시민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한다. 지난 2018년 시민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반짝 이벤트로 광장 한복판에 야외 수영장을 오픈했지만, ACC의 이미지를 훼손한 무리수라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최근 ACC는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하늘마당에서 전당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 설치공사를 진행중이다. 이용객들의 편의증대를 위한 첫 걸음인 것 같아 반갑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언제쯤이면 ACC 광장이 DDP와 MQ 못지 않는 도심 속 오아시스가 될 수 있을까?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