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필요한 36.5도의 가장 따뜻한 선물 - 임광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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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필요한 36.5도의 가장 따뜻한 선물 - 임광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과장
2025년 12월 26일(금) 00:00
연말 방송과 신문 지면에 각종 기부와 연탄·김장 봉사활동 등 훈훈한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 한 해에도 광주전남 17만명이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기부(Donation)에 동참하고 있다. 바로 가장 따뜻한 36.5도의 혈액 기부 ‘헌혈(Blood Donation)’이다.

기부자가 줄어들면 수혜자에게 선물이 고루 돌아갈 수 없듯 최근 혈액 재고가 보건복지부 적정 기준치인 5일분 미만 상태로 지속되어 수혈을 기다리는 환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혈액원 공급팀에서는 혈액수급 위기단계 하향에 대비하며 병원들이 요청한 혈액에 비해 제한된 혈액을 출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주 서울과 광주 지인 2명으로부터 주변 분들에게 요청해서 지정헌혈을 도와 달라는 전화를 받기도 하였다.

혈액부족 현상은 지난 10년까지 만해도 학생들의 동계 및 하계 방학 기간인 1월~3월, 7월말~8월 기간에 집중되거나 특별히 신종플루 메르스 등 전염병 대유행 기간에만 한정되었다. 그러나 혈액 부족이 최근에는 동하절기 이외에도 이전보다 훨씬 더 자주 장기간 일어나고 있다. 최근 빅데이터를 이용해 11월 중순 이후 전국 혈액 재고가 안정적일 것으로 예측했지만 헌혈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예측이 벗어났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저속노화 전문가인 서울아산병원 정희원 교수와 인구통계학자인 고려대 김오석 교수의 공동 논문 ‘미래의 혈액 부채(負債)가 몰려온다’ 에 따르면 앞으로 20년간 헌혈자는 35.5% 감소하지만 수혈자는 29.5% 증가한다고 예측한다. 즉 20년 뒤에는 수혈 필요 환자 두 명 중 한 명 정도만 혈액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혈액부족 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의 영향이다. 헌혈버스가 고등학교로 찾아가서 만 16세가 된 고교 재학생들을 대상을 단체헌혈을 실시해보면 학생들이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광주광역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광주지역 고등학교 학급당 학생수는 올해 24.7명으로 10년 전 34.0명에 비해 약 10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또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헌혈자를 모집하는 경우 10년 전에는 학급수의 절반 가까이 또는 학급 전체가 헌혈 지원을 한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 한 학교에 한 두 학급 정도는 헌혈 지원자가 단 1명도 없는 경우도 꽤 많다. 청소년들에게 간절한 말로 헌혈 참여 호소를 하여도 마음과 귀가 열리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대적인 수혈 증가 속에 국민적인 헌혈 동참 운동으로 전후 세대들이 높은 헌혈 참여를 보였다. 현재는 앞선 베이비부머 세대들을 대체하여 헌혈에 꾸준히 참여할 젊은 세대들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적십자사 및 민간 혈액은행들은 젊은층 및 증가하는 이민자 그룹 대상 헌혈자 모집 및 홍보를 주요 추진 과제로 삼고 있다.

광주전남지사의 경우 과거 가장 많은 헌혈자를 모집했을 때는 1998에서 2001년 기간이다. 1997년 말 IMF 한파 기간 중 전국민 금모으기운동 한편에 외국으로부터 혈액수입을 줄이자는 헌혈운동 또한 활발히 이루어져 1998년 광주전남혈액원에서는 처음으로 20만명의 헌혈자를 모집하였으며 2001년에는 25만2891명을 기록하여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당시 헌혈에 동참하던 10대, 20대였던 분들이 현재까지 꾸준히 헌혈에 동참하여 40대 이상 헌혈자 및 회사원 등 직장인들의 헌혈 비율이 2025년 현재 2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광주시의회 이명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광주광역시교육청 헌혈교육 활성화 조례안’이 10월 24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었다. 의안 심사보고서에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헌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청소년기부터 형성되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헌혈 참여 문화 조성에 기여할 것이며, 이를 통해 사회적 나눔과 공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 적절한 입법 조치로 판단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이슈가 된 ‘소년이 온다’ 의 배경지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 11호인 옛 광주적십자병원 등에서 총상 환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헌혈에 동참한 411명의 헌혈자들과 주먹밥을 나누었던 시민들의 ‘연대와 나눔’의 역사와 정신이 우리 지역 공동체 안에 숨을 쉬고 있다.

저출산 및 고령화 확산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워지는 요즘 광주광역시교육청 헌혈교육 활성화 조례안 제정이 모멘텀이 되어 ‘연대와 나눔’이란 가치와 유산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져 36.5도의 따뜻한 헌혈과 물적·인적 기부가 365일 부족하지 않는 온기 있는 공동체가 더욱 견고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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