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향집’의 귀향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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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집’의 귀향이 반가운 이유
2024년 11월 05일(화) 19:50
한국서양화단의 개척자인 고 오지호(1905~1982) 화백은 생전 집 3채를 남겼다. 그의 대표작에 등장하는 남향집(개성)과 태어난 생가(화순), 그리고 말년을 보냈던 고택(광주)이다. 이들 작가의 집은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송도(개성)고보 재직시 거주했던 남향집은 훗날 작품 ‘남향집’으로 구현됐고, 화순 동복의 생가와 광주 지산동의 초가집은 그의 삶과 예술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의 예술혼이 살아 숨쉬는 집들은 온기를 잃은(?) 듯 보인다. 국가등록문화재 제 536호로 지정된 ‘남향집’(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고향을 떠나 40년 간 ‘타향살이’중이고, ‘오지호 기념관’으로 변신한 화순 생가는 찾는 발길이 거의 없어 썰렁하기 짝이 없다.

그중에서도 광주 지산동 주택가에 자리한 초가(광주시 기념물 제6호)는 문화광주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오 화백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던 1954년부터 1982년 타계할 때까지 30여 년간 머물렀던 뜻깊은 곳이지만 1년에 한번씩 지붕을 교체하는 이엉작업에만 지원을 받을 뿐 사실상 방치돼 있다. ‘예술가의 집’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대책이 미흡해 관광객들은 커녕 지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 가을, 거장의 대표작인 ‘남향집’이 4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전남도립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오는 15일 부터 내년 3월2일까지 오지호와 인상주의를 주제로 기획한 ‘오지호와 인상주의:빛의 약동에서 색채로’에서다. 이번 특별전에는 일본동경예술대 시절의 졸업 작품인 ‘자화상’에서 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인 ‘설경’, ‘처의상’, 리움미술관의 컬렉션 등 그동안 광주에서 보기 힘들었던 명작들이 대거 선보인다. 맑은 공기와 투명한 빛이 쏟아지는 화폭이 인상적인 ‘남향집’은 벌써부터 관람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무엇보다 ‘남향집’의 귀향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1985년 오 화백의 유족들이 ‘남향집’을 비롯한 37점을 전남도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변변한 미술관이 없어 부득이 서울로 떠나 보냈기 때문이다. 기증 당시 현대미술관은 유족들에게 오지호 상설전시관 건립을 약속했지만 이행하지 않은 채 상당수의 작품이 지하 수장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 시설이 부족해 그의 작품들을 별도로 전시할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오래전 ‘남향집’앞에 선 나는 당시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명작을 봤을 때의 벅찬 감동과는 결이 다른 감정이었다. ‘남향집’이 현대미술관의 품에 안길 수 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이 떠올라서였다.

예술가들의 집을 잃는 다는 건 그들의 삶과 창작경험에 접속할 ‘끈’을 놓치는 것일터. 예술가들이 오래 머문 공간은 자신들의 삶 뿐만 아니라 작품에 영감을 준 뮤즈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려면 그들의 집과 아뜰리에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침, 내년은 거장이 탄생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남향집’이 반가운 건 그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문화광주에 근사한 ‘오지호 공간’이 들어서게 될까.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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