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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사회복지회 부국장
2021년 10월 29일(금) 04:00
우리는 영상이나 책을 통해서 수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얻은 정보는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몰랐던 것을 알아 지식이 쌓기도 하고 반복되고 지치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때론 삶을 새롭게 하여 보다 더 나은 삶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최근 좋은 영상을 보았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샘 리차드(Sam Richards) 박사의 강의였다. 그의 강의는 미국 전역에서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강의의 주제는 K-pop 스타인 방탄소년단과 한국 드라마 등의 문화콘텐츠였다. 영상을 시청하는데, 샘 리차드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를 배우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말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고, 해답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학을 비롯한 수많은 학문들은 어떤 현상들에 대해 사고(思考)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사고는 왜 그렇게 되는지,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에 있어서 질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요하다.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 신앙의 이유를 알기 위해 하는 질문도 중요하다. 그래서 샘 리차드의 말은 존재와 삶과 신앙의 이유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앞으로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에 따라 각자 다른 인생의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씀은 항상 우리 존재의 이유를 묻게 하고,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구름을 보고 비가 올지를 예측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더워지겠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 시대를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는지 강하게 질타하신다.(루카 복음 12장 54절~59절)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높은가? 중요한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첫째이며 누가 주님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제자들이 예수를 따르면서 논쟁을 부추겼던 권력과 탐욕의 내적 질문들이었다.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위해 나누어야 하는 제자들이 관심을 권력과 욕심에 두고 있으니,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 예수를 따르는 신앙의 이유도 망각했던 것이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대학을 다니는 이유는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를 배우는 것이다”라는 샘 리차드의 말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관심을 하느님의 뜻에 두기 위해서이다”라고 바꾸어 표현하고 싶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곧 나의 존재가 하느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엇을 하시려는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존재하면서도 존재를 망각해 버리고, 살면서도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린다.

창조 때 인간의 존재는 은총 가득하며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모님이 우리를 낳아 기쁨과 행복이 가득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우리의 소중한 존재가 미움받고,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짓눌리고, 멈추지 않는 과도한 소비주의 풍조와 경쟁사회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존재와 삶과 신앙의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 신앙의 이유를 우리에게 사랑과 희생으로 보여주셨다. 낮추고 기다리면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이 자기 존재를 아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그렇다면, 내 존재의 이유, 내 삶의 이유, 그리고 믿는다면 내 신앙의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관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