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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Vegan)과 비거니즘(Veganism)-박행순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2021년 09월 29일(수) 07:30
국제채식인연맹(International Vegetarian Union)은 1908년 독일에서 창립되었다. 연맹은 채식주의자를 여덟 부류로 나눈다. 그중 느슨한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가끔 육식을 하는 준(準)채식인이다. 반면에 프루테리언(Fruitarian)은 과일과 곡식 외에는 식물의 뿌리나 잎도 먹지 않는 극단적 채식인이다.

비건(Vegan)은 채소(vegetable)에 어원을 둔 완전 채식인으로 육류, 생선은 물론이고 알, 꿀, 유제품 등 동물에게서 얻은 식품 일체를 거부한다. ‘비건’이라는 용어는 1944년 영국에서 ‘비건 뉴스’(The Vegan News)를 창간한 도널드 왓슨이 Vegetarian의 앞뒤 글자를 결합해 쓰기 시작했다. 비건을 지지하는 주의 주장으로써 비거니즘(Veganism)은 화장품,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비건 패션에서는 모피나 가죽, 울 등 동물성 소재뿐 아니라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크도 배격한다. 비건 패션의 대표적 인물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를 꼽는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CEO, 당대의 패션 스타로도 알려졌는데 콩 단백질을 가공한 섬유로 만든 양복을 입고 다녔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콩 섬유로 만든 침구, 손수건, 유아용 제품 등이 판매된다.

국제채식인연맹은 기아 해결, 환경 보호, 생명 존중과 건강 증진을 위하여 채식을 권한다. 연간 170억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인간의 식재료로 쓰인다고 추정한다. 콩이나 옥수수 등을 가축의 사료로 쓰면서 많은 비용을 들여 고기를 얻는 데 이런 곡물은 빈곤층의 먹거리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성과 식물성 단백질의 질적 차이가 그 추가 비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축은 직접 다량의 탄소 화합물을 배출하고 방목은 초원과 산림 훼손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해양 다음으로 중요한 탄소 저장고이다. 따라서 채식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과도한 육식은 채식에 비해 비만, 혈관 질환, 암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인병의 주범 역할을 하는 콜레스테롤은 동물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성분이다.

생명 존중은 인간에게 중요한 규범이며 윤리적 가치이다. 동물애호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도살용 가축이나 가금류 등의 사육 현실은 심각한 동물 학대 수준이다.

2016년 우리나라 최초의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 수상작인 ‘The Vegetarian’(채식주의자)은 한강 작가의 연작소설을 드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에서 출판하였다. 맨부커상은 세계 3대 문학상에 드는 권위 있는 상이다. 소설은 수상 후 단 3일 만에 32만 부를 돌파하였는데 이는 수상전 총 판매량의 10배가 넘는다.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을 끝없이 헤치며 출구를 향해 달리고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생생한 감촉 등 끔찍한 꿈을 꾼 후 채식주의자가 된다.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자해 시도, 이혼으로 이어지는 가정 파탄, 정신병동에서 그녀의 물구나무서기는 천지가 뒤바뀌는 경험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 관계, 삶과 인격의 파괴를 상징한다.

한강의 소설을 읽었음 직한 외국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질문한다. 한국에도 비건이 있는가? 한국에서 비건이 생존할 수 있는가? 소설은 상당 부분 사회상을 반영하기에 이러한 궁금증이 생긴다.

장상록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혐오하는 사회’는 77편 칼럼 중 한 편의 제목이다. 보신탕을 못 먹던 그는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의 손님으로부터 ‘보신탕도 못 먹는 사내’라는 질타 섞인 면박을 당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보신탕뿐 아니라 채식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고 그에 따라 타인의 자유를 구속한다.

다양한 인권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현 시대에 채식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