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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씨의 명예-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
2021년 09월 09일(목) 00:30
전두환 씨의 항소심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전두환은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했다. 전두환의 회고록에서 파렴치한으로 묘사된 조비오 신부는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될 정도로 명예로운 성직자였다. 조비오 신부는 성직자로서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실천가였다.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조비오 신부는 ‘신부인 나조차도 만약 총이 있다면 계엄군을 쏘고 싶었다’라며 광주의 참상과 신군부의 야만적인 살상 행위를 증언했다. 특히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함으로써 헬기 사격 문제가 공론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조비오 신부님을 파렴치한으로 매도한 것은 이러한 신부님의 삶의 여정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전두환 회고록 발간 이후 2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사법부는 전두환씨의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헬기가 위협 사격 이상의 사격을 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전두환은 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1심 재판 출석 과정에 “이거 왜 이래”라고 역정을 내서 공분을 자초했던 전두환 씨가 2심 재판에는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해 걱정을 자아냈다. 재판 이후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건강 문제로 사법적 단죄가 마무리되지 못할까 봐 전 씨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항소심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군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5·18 관련 내용을 기술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 회고록 집필에 깊숙하게 관여한 민정기의 증언에 따르면 학살자로 매도되어 군대의 명예가 훼손되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또 다른 왜곡이자 군의 명예와 책임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적반하장의 발언이다.

5·18과 관련해서 광주시민 그 누구도 군대를 학살자로 매도한 사실이 없다. 1980년 당시 신군부가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 사실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신군부 관계자에게 묻고 있을 뿐이다. 5·18 때문에 군대의 명예가 부당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보호는 군대의 존재 이유이자 군에 부여된 소중한 책무이다. 군의 명예는 국민을 보호했을 때 지켜진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도 군의 명예는 지켜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신군부는 권력 찬탈을 위해 자국의 국민을 상대로 헬기 사격까지 서슴없이 자행했다.

이러한 살상 행위는 군의 명예와 책임을 스스로 버린 반헌법적 작태였다. 반면에 광주시민들은 신군부의 폭압 앞에 굴종이 아닌 저항과 영예로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 폭력에 관한 증거이자 불명예의 증표가 되었다. 이후 5월 광주는 저항의 상징으로서, 모두의 통치인 대동세상의 구현으로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역사적 변곡점에서 5월 광주가 호명되는 이유이다.

신군부 스스로 실추시킨 군대의 명예는 군이 자행한 역사적 과오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참회가 있을 때 회복될 수 있다. 더 이상 실추될 것도 없겠지만 전두환 씨가 군인으로서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면 사실에 대한 고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군의 명예는 잘못이 없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했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때 지켜질 수 있다. 전두환 항소심 재판은 군이 명예를 지키는 방법을 역설적으로 환기시켜 주고 있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관계자들의 진솔한 사과가 필요한 이유이다. 양식 있는 광주시민은 사법적 단죄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전두환 씨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