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안보전략에서 사라진 북한- 김흥빈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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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안보전략에서 사라진 북한- 김흥빈 한성대 교수
2025년 12월 11일(목) 00:20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2월 5일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미국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최상위 전략 지침으로, 국방예산 편성과 군사력 배치, 동맹 관계 운영의 기준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세계 곳곳에 개입하며 국제 질서를 관리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략은 그 부담을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번 전략의 핵심은 미국이 모든 지역 문제를 직접 해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도 동맹의 부담 분담이 강조됐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방위비 논쟁을 넘어선다. 각 지역에서 동맹국이 1차적 책임을 지는 구조로 전환한다는 메시지다. 한국은 미국 주도 안보 구조에서 한국 주도 역량 구축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반도는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환경 속에서 오히려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규정하면서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부상했다. 한국의 안보적 위치도 더 민감해졌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대응이 아니라 주변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국가 이익을 지키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이유다.

북한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이번 국가안보전략에서 북한이 단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7년 트럼프 1기 전략에서 북한이 주요 위협으로 여러 차례 언급되고 2022년 바이든 행정부 전략에서도 북한이 언급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반도 완전 비핵화’ 목표도 삭제됐다. 북한 문제가 미국의 안보 우선순위에서 밀렸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북한은 재래식 군사력과 미사일·핵 능력을 바탕으로 전략 행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국제 제재 속에서도 군사 역량을 고도화했으며 러시아와의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대응 영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처럼 북핵 문제를 국제사회가 함께 다루기보다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안정과 억지를 설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번 전략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공급망 안보와 기술 경쟁력이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반도체, 첨단기술, 에너지, 희토류, 바이오산업 등을 주권 안보와 같은 수준으로 다뤘다. 국가 경쟁의 중심이 군사력에서 ‘기술 지배력과 공급망 통제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반도 안보도 더는 군사 문제에만 머물 수 없다. 경제·산업 기반과 국제 공급망 전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안보 전략의 재편을 요구한다. 한미동맹은 ‘전통적 역할 구조’에서 ‘상호 역량 기반’으로 발전해야 한다. 첨단 방공체계와 정보감시 능력을 강화하여 북한의 미사일·핵 위협을 억제하고 사이버·우주·경제안보 등 현대전의 새로운 영역에서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배터리·에너지 분야의 기술력과 생산 기반을 지키는 정책적 뒷받침도 중요하다. 주변국과는 감정이 아닌 실리로 접근하며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 같은 대응이 가능한 것은 한국이 핵심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산업 분야의 높은 경쟁력이 그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등 전략 산업에서 한국은 이미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이는 부담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의 기술은 양측 모두에게 필요한 자산이며 이를 활용한 전략적 외교가 가능하다. 기술력이 국가안보의 기반이 되는 시대에 한국의 기술·산업 역량은 안보의 중요한 축이 된다. 한반도 평화는 여전히 중요한 목표지만 그 평화를 지키는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외부의 보호에만 기대던 시대는 끝났다.

변화된 환경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모든 것을 떠안지 않으며 동맹국은 스스로의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70년 이상 지속된 한미동맹이 새로운 단계로 진화할 시점이 왔다.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와 방법이다. 안보 자율성 확보는 이미 시작됐고 기술 기반 안보 체계 구축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를 우리가 주도하느냐, 아니면 외부 상황에 끌려가느냐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전환은 한국에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단을 요구한다. 전략적 자율성은 스스로 쟁취해야 할 과제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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