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김남주 詩 묵직한 울림, 신영복체로 힘 더했죠”
[김남주 문학제 시화전 참여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장]
제자 등 30여명과 김 시인 대표작 ‘나의 칼 나의 피’ 등 선보여
광주 오월미술관서 30일까지 전시…“사회문제에 서예 접목하고 싶어”
2021년 01월 19일(화) 00:00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농부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 나의 칼 나의 피를// 오 평등이여 평등의 나무여.’ <나의 칼 나의 피 중에서>

80년대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맞서며 혁명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시혼을 불태웠던 ‘민족시인’, 김남주의 시를 손글씨로 옮긴 시화전이 광주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김남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2020 제20회 김남주문학제’를 통해 열렸다. ‘옛 마을을 지나며’를 주제로 지난해 11~12월 해남에 이어 지난 15일 광주 오월미술관을 찾았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에는 세종손글씨연구소 회원 등 30여명이 참여해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랑1’ 등 시 25편을 손글씨로 옮겼다.

해남 출신이자 광주제일고, 전남대 영문학과를 거쳤던 김남주는 반(反)유신 신문 ‘함성’ 등을 제작하는 등 활동으로 수 차례 옥고를 치렀다. 감옥에서 청춘을 보내며 새 세상을 꿈꿨던 김남주는 투옥 중에도 우유곽에 새긴 시를 아내에게 꾸준히 전할 만큼 시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1993년 사면 복권됐지만, 이듬해 췌장암이 급속히 악화돼 48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김성장(62) 세종손글씨연구소장은 “김남주는 80년대 사회 운동에 가장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 시인이며, 그의 시가 주는 강렬한 힘은 지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 12월 고(故) 김용균 2주기 추모회부터 세월호 기억전, 노무현 추모전 등에서 손글씨 작품을 선보인 서예가다.

그는 ‘신영복체’(쇠귀체) 연구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신영복체는 고(故) 신영복(1941~2016) 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의 글씨체를 말한다. 조정래의 ‘한강’과 저서 ‘처음처럼’의 표지 글씨 등에 쓰인 것으로 잘 알려졌다. 김 소장은 지난 2008년 원광대에서 신영복체를 연구해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김남주기념사업회도 서민적인 정서가 묻어나면서도 획마다 힘이 실려 있는 신영복체가 김남주의 시와 잘 어울려 김 소장에게 시화전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복체는 단순한 글씨체가 아닌, 하나의 조형 예술이지요. 기계적으로 인쇄한 글자체로는 그 붓맛과 느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서예 공부를 하다 우연히 신영복체를 만났는데, 그 글씨가 주는 힘에 이끌려 조금씩 따라 쓰다 보니 어느새 학문적인 분석까지 하게 됐죠.”

1980년대 ‘분단시대’ 동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옥천에서 국어교사로 활동했다. 퇴직 후 지난 2015년 세종시에서 ‘세종손글씨연구소’를 열고 6년째 손글씨 쓰는 법을 연구·강의하고 있다. 그가 세종·서울에서 강의하며 인연이 닿은 이들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김 소장은 “사회 이슈 되는 현장에 나서서 글 쓰는 게 목표이자 꿈”이라며 “서예를 정치, 노동, 교육, 환경 등 사회적 문제와 이어지는 예술 장르로 승화하고 싶다”고 웃었다.

“서예는 그동안 실내에서 얌전하고 조용하게 하는 예술이란 인식이 강했습니다. 글씨가 필요한 모든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사회적 주제를 예술적인 글씨로 바꾸는 것, 서예가 그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