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하염없이 내리고…그리움은 하늘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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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하염없이 내리고…그리움은 하늘로 올랐다
‘제주항공 참사’ 1주기 추모식
공항에 전국서 추모객 잇단 발길
희생자 호명될 때마다 통곡 가득
유가족들 로컬라이저 앞 헌화
시민들 “잊지 않겠다”며 넋 기려
세월호 유가족 등 참석 아픔 나눠
“진상규명 철저히 해야” 한목소리
2025년 12월 29일(월) 20:50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인 29일 사고 현장인 둔덕(로컬라이저) 주변에 유가족들이 놓고 간 국화꽃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무안=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무안국제공항 일대는 활주로 현장부터 공항 청사 내 분향소까지, 유가족들의 비통한 울음소리로 잠겨 있었다.

유가족들은 “제발 살려내라”, “돌아와라” 외치며 절규했고 사고 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이날 무안군 망운면 무안국제공항 터미널 2층에서 엄수된 1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집으로 오는 길’을 주제로 한 공연에서는 항공기가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공항으로 향하던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자, 희생자들의 이름이 한명씩 호명될 때마다 장내 곳곳에서는 애타는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의 슬픔은 이날 오후 여객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 현장을 방문하면서 극에 달했다.

희생자 유가족과 지인 등 400여명과 함께 사고 현장인 활주로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를 찾아가 보니, 콘크리트 둔덕은 사고 당시의 충격을 그대로 품은 채, 무심하게 1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두꺼운 콘크리트는 곳곳이 깨져 일그러졌고 둔덕을 감싸던 흙더미는 기체의 형태를 따라 깊게 패여 있었다.

철근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힘 없이 휘어졌으며 주변 바닥에는 콘크리트 조각과 각종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유가족들은 떠난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를 모아 태우며 눈물을 흘렸고 한명씩 차례로 헌화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유가족 손주택(67)씨는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거나 기체가 조금만 비켜갔어도 아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현장에 남은 사고 흔적을 보니 마음이 더 무너진다. 하루빨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 떠난 이들의 한이 풀렸으면 한다”고 눈가를 훔쳤다.

조승현(67)씨도 “사고 1년만에 현장을 찾아오니, 답답함과 슬픔만 더 커진다”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왜 가족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하나도 밝혀진 것이 없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공항에 구름처럼 몰려든 추모객들도 추모식을 지켜보며 “잊지 않겠다”고 눈물로 다짐하며 함께 울음을 삼켰다.

공항에는 이른 아침부터 전국에서 찾아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1층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명패 앞에 고개를 숙여 헌화하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나주에서 온 정아영·방지예(여·32)씨는 “고등학교 동창이 제주항공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났지만 사고 원인 조사에는 진척이 없는 것 같다”면서 “친구에게 ‘보고 싶다’고 전해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흥에서 온 이금숙(여·52)씨는 “사고 1주기를 맞아 연차를 내고 일부러 공항을 찾았다”면서 “지역에서 이런 큰 사고가 벌어졌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다시는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청주에서 온 박안수(63)씨도 “사고 소식을 듣고 무안공항으로 달려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며 “아직도 그날의 슬픔이 느껴지는 것 같다.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명백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현장에는 다른 대형 재난 참사 유가족들도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아픔을 함께 나눴다.

대구 지하철 참사로 딸을 잃은 황명애(여·69)씨는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알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며 “2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다. 제주항공 참사는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김순길(여·59)씨는 “여행을 떠난 자녀가 돌아오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또 이런 비극이 반복됐다”며 “우리 사회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두가 손을 맞잡고 참사가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 정군자(여·66)씨도 “삼풍 참사가 일어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런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우리가 더 힘을 모아 안전사회를 만들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무안=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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