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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의 삶 속 시가 중심 잡아줬다”
등단 26년만에 첫 시집 ‘물 밖에서…’펴낸 광주 출신 김호균 시인
아시아문화전당 전문위원 역임
31일 민들레 소극장서 출판기념회
2020년 10월 29일(목) 08:00
“선후배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시 안쓰고 뭐하냐?”고 물어오곤 했어요. 어떤 이들은 “네 시집 기다리다가 목 빠지겠다”고 말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그 분들에게 이제 할 말이 생겼네요.”

광주 출신 김호균 시인. 지난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그동안 ‘시집 없는 시인’으로 살아왔다. 그가 등단 26년 만에 첫 시집 ‘물 밖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다’(걷는 사람)를 펴냈다.

“90년대 중반 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자는 제안이 왔었어요. 결과적으로 준비하다 끝내 묶어내지 못했지만…. 80년대 격변의 시기 속에 썼던 시들은 90년대라는 당대와 조응하기엔 부족하거나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

시집을 건네는 그의 표정에는 오랜 숙제를 끝낸 후련함 같은 게 어려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너무 늦게 왔지만 늦은 만큼 세상과 새롭게 마주하고 싶다”는 말이 들려왔다.

시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문화전당(ACC) 연구교류과 전문위원으로 활동을 했다. 이전에는 북구 문화의집을 중심으로 문화운동을 하기도 했다. 모두 문화예술과 연관된 활동이었지만 때로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럼에도 “중심을 잡고자 애썼는데, 그 중심의 키를 잡아준 것이 시”였다.

그가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등단했을 때, 지역에서 화제가 됐다. 남도 시문학을 이끌 신예가 나타났다는 상찬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일이다.

“광주청년문학회에서 품평회 같은 것을 했는데 신춘문예에 당선한 ‘세숫대야論’은 주목을 받진 못했어요. 어쨌든 다행히 가장 상금이 많았던 세계일보(200만원으로 기억한다)에 내 시가 뽑혔죠.”

그는 당시에 지역 일간지에 동화도 당선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시인은 “신춘문예 상금으로 농성동에 있는 이층 셋방에서 오치동 낡은 아파트로 옮겼다”며 “딸 채운이를 키울 수 있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번 시집 제목이 특이하다’는 물음에 “세상 속에 있되, 세상 속에 빠지지 말자”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유고슬라비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당장 쉬운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사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세상은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네 편과 내 편을 요구하지만 사실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는 헤아려 볼 만한 부분이 많거든요. 그 경계와 이분법을 치열한 사유를 통해 극복해 가자는 의미입니다.”

“불쑥 쳐들고 있는 머리 꼭대기/ 왕방울 눈을 한 짱뚱어는/ 갈대를 휘게 하는 바람을 보았으리(중략)/ 참호를 파놓고 눈자위를 끔벅끔벅 사주경계하느라 여념 없는// 그 둘러보는 힘이 없었다면/ 짱뚱어는 짱뚱어가 아니었으리”(‘짱뚱어1’중에서)

위 시 ‘짱뚱어1’에서 보듯 시인의 사유는 은유적이다. 또한 어떤 것의 경계를 넘는다. 평론가 김형중의 표현대로 “세속에 함몰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훌쩍 날아오르는 초월을 감행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획득한다.

‘오랫동안 ACC에서 몸담았던 터라 남다른 애정이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문화예술은 본질적으로 ‘이상’을 먹고 자란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러면서 “ACC가 ‘꿈을 포기하는 순간 죽음’이다”며 “참으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현실로 뒷걸음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그의 시를 향한 꿈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지역 공동체 꿈과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를 믿는다. 시는 나를 망가지지 않게 지켜주었다. 낡은 안경처럼 오래되었으나 그것으로 오롯이 내가 가야 할 앞길을 놓지 않았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경계에서,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한편 출판기념회가 오는 31일 오후 5시 민들레 소극장(광주시 동구 동계천로 111)에서 열린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