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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 무죄?…성범죄 ‘묵시적 동의’ 법 적용 눈길
광주지법 ‘판결 2제’ 보니
[사귀던 여성 나체 촬영] 가까이 접근해서 찍은 사진
촬영사실 알았을 가능성, 항의·삭제 요구 등 없어 “무죄”
[드라이브 중 강제추행] 이전 성관계 항의 문자 보냈고
인적 드문 곳 두려움 느껴, 묵시적 동의 해당 안 돼 “유죄”
2020년 08월 03일(월) 00:00
광주 지방 법원 법정 전경.
#.A씨는 사귀던 여성과 호텔에 투숙했다가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했다. 남성은 몰래 촬영한 게 아니고 당시 삭제 요구도 받지 않았다며 항변했다. 남성은 성범죄로 처벌을 받을까.

#.B씨는 한 달 전 처음 알게된 뒤 주 2~3회 가량 만난 여성과 야간 드라이브를 하다 여성의 신체 부위를 만졌다. 남성은 이미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고, 평소 드라이브 때도 비슷한 수준으로 행해진 스킨십으로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여성의 동의를 얻은 걸까.



법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갈수록 다양해지는데다, 남녀 관계의 특성상 서류만으로는 어디까지가 동의이고 거부인지 판단하는 게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을 정립한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상대방의 기분이나 의사보다는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만 접근했다가 처벌받은 남성, 정신적 피해(수치심)를 입었다는 문제제기에 과도한 대응이라는 판결을 받은 고소인 여성 등 기존의 관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판결들이 잇따르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3단독 김승휘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용)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8년, 사귀던 여성이 호텔 욕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동의 없이 찍었다는 게 기소 요지다.

A씨는 연인 사이였고 앞에서 촬영한 사진을 여성이 확인까지 했고 당시 삭제를 요구하지 않았다며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촬영 사진이 가까이 접근해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데다 각도·거리 등을 고려하면 촬영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항의하거나 삭제를 요구한 점이 보이지 않는 점, 연인관계였고 사진 존재를 알고 5개월 이상 지난 시점에 고소가 이뤄진 점 등을 들어 A씨 손을 들어줬다.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묵시적으로도 동의하지 않았다’는 여성 진술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피고인 주장과 달리 판단한 사례도 있다.

같은 재판부는 지난달 초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씨에 대해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에게는 4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수강도 명령했다.

B씨는 지난해 10월 밤에 여성과 드라이브를 하면서 손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피해 여성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 등으로 기소됐었다.

B씨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는 주장을 폈다. ‘한 달 전 처음 만났고 매주 3~4회 가량 만나며 연인관계로 발전, 수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 함께 드라이브할 때도 늘상 이뤄지던 스킨십의 하나였다. 사건 당일에도 신체 부위를 만졌지만 거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손을 남성 손 위에 올려놓기까지 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재판부는 그러나 ‘여성의 묵시적 동의가 있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주 2~3회 만났고 성관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원해서 이뤄진 게 아니고 이 때를 제외하면 연인 사이에서 이뤄질 만한 스킨십이 없었던 점, 또 문제의 사건 전에 여성이 강제적으로 이뤄진 성적 행위를 항의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을 반영했다.

재판부는 ‘연인 사이에 예상할 수 있는 스킨십으로 추행이 아니다’는 B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행위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고 밤 11시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이뤄진 만큼 피해자로서는 압박감이나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성인지적 관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평소 관계, 주고받은 카톡메시지, 신고 경위 등을 보충해 피해자가 처한 앞뒤 맥락을 좀 더 살펴 판단했다는 주장이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