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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비운의 여인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홍미숙 지음
2020년 07월 10일(금) 00:00
궁녀에서 왕비의 자리까지 초고속 승차한 희빈 장씨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대빈궁(위)과 사도세자 어머니 영빈 이씨가 잠들어 있는 수경원. <글로세움 제공>
“중인 집안 출신으로 궁녀가 되어 입궁한 장씨는 희빈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이었을 텐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급기야 희빈 장씨는 숙종의 제1계비인 인현왕후 민씨를 모함하여 몰아내고 왕비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다. 당시 숙종은 그녀에게 푹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숙종은 희빈 장씨를 빈으로 승격시킨 다음 왕자도 낳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있던 제1계비 인형왕후 민씨를 폐위시켰다. 그리고 희빈 장씨를 책봉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2명의 왕비가 낳지 못한 아들을 낳음으로써 궁녀에서 왕비까지 초고속으로 신분 상승하였다. 궁녀 출신이 왕비에 오른 경우는 희빈 장씨가 처음이었다.”(본문 중에서)

조선의 왕은 27명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가운데 실제 왕비의 소생은 몇 명이나 될까? 모두 15명이었다. 조선의 실제 왕비는 3명의 폐비(성종의 폐비 윤씨, 연산군의 폐비 신씨, 광해군의 폐비 류씨)를 포함해 41명이다. 이들 중 13명만이 왕을 낳았으며 나머지는 왕을 낳지 못했다.

조선은 왕비가 왕자를 낳지 못하면 후궁의 아들이 대를 잇는 왕조국가였다. 1대 태조부터 13대 명종까지는 적자가 왕위에 올랐다. 문제는 명종 사후에 불거졌다. 당시 인순왕후 심씨와의 사이에 순회세자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자가 13세에 요절했다.

종묘에는 조선의 왕과 왕비, 사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묘 다음 큰 사당이 바로 칠궁이다. 조선의 왕을 낳았으나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됐다. ‘조선이 버린 왕비들’의 저자인 홍미숙 작가가 펴낸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비운의 여인들을 불러낸다.

“칠궁은 원래 제21대 왕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육상궁 자리였다. 무수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 그녀는 숙종의 후궁이 되어 조선의 최장수 왕이자 최장기 집권왕이었던 영조를 낳았다.”

저자는 왕을 낳은 후궁들 7명은 영조와 어머니 숙빈 최씨 덕을 봤다는 입장이다. 숙빈 최씨 사당이 있던 자리로 모두 옮겨와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명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선조는 적통이 아닌 방계혈통이었다. 중종과 후궁 창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의 3남이 바로 선조였다. 그런데 선조 또한 원비 의인왕후 박씨 사이에 자녀가 없었던 탓에 적통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했다. 계비 인목왕후 김씨가 영창대군을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선조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영창대군은 너무 어렸다.

그 결과 서자였던 광해군(공빈 김씨의 소생)이 왕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선조의 또 다른 후궁 인빈 김씨의 아들 정원군의 맏아들 능양군이 반정을 주도해 이복 삼촌 광해군을 몰아낸 것이다.

칠궁은 모두 다섯 채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은 재실 영역, 삼락당 영역, 육상궁 영역, 대빈궁과 경우궁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7명의 후궁들 중 유일하게 왕비에 올랐던 이는 희빈 장씨다. 그러나 그녀는 악행 탓에 폐비의 운명을 맞았고 이후 후궁으로 강등됐다. 연산군의 어머니처럼 서인으로 강등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희빈 장씨 이후에는 후궁이 다음 보위를 이을 왕을 낳았어도 왕비에 오를 수 없었다. 희빈 장씨 악행에 질린 숙종이 국법을 고쳐 버렸다. 결국 후궁들은 왕비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 자리를 넘볼 수 없었고 왕의 첩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밖에 책에서는 영조의 후궁 연호궁의 정빈 이씨와 선희궁의 영빈 이씨를 비롯해 정조의 후궁 경우궁의 수빈 박씨, 고종의 후궁 덕안궁의 순헌황귀비 엄씨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글로세움·1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