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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 역사와 문화 깃든 한국 정원의 미학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한국 정원 기행
김종길 지음
2020년 06월 05일(금) 00:00
조선의 3대 민간 정원인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은 섬 속의 낙원이라 일컬을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사진은 세연정과 세연지. <미래의 창 제공>
영남 지역은 사람파가 많아서 별서가 주로 강학의 장소로 활용됐고, 서울과 호남의 경우에는 주로 교유와 풍류의 장이었다. 또한, 호남의 별서는 주로 넓은 들판이나 멀리 산과 주변 계곡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영남과 서울, 충청의 별서는 주로 계곡이나 나무 숲에 있었다. 호남의 별서가 세련되고 섬세하여 여성적이라면, 영남의 별서는 호방하고 투박하며 남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의 별서들은 세도가들이 소유했던 것인 만큼 화려했다. 충청은 영남과 유사했다. 정자의 형태도 강학의 성격이 강했던 영남은 방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었고, 은일의 기능이 강했던 호남은 방이 정자의 중앙에 있거나 없는 형태가 많았다.(본문 중에서)



바야흐로 여름이다. 맑은 계곡과 우거진 숲,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렇다면 물과 숲, 그늘이 있는 곳이 어디일까? 바다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정원 또한 이에 못지않다.

프랑스 루이 14세는 정원을 산책하는 코스 등을 다룬 ‘정원을 관람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썼다. 중국에서는 원림에 설치된 ‘유랑’의 장치를 매개로 경치를 감상하게 한다. 의도적인 장치다. 일본식 정원은 ‘순로’(順路)를 설정해 감상 경로를 따르게 한다. 이 또한 의도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한국의 정원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의도나 인위가 아닌 다양한 시점으로 봐야 제 맛이 난다. 바로 인문여행가 김종길의 얘기다. EBS ‘한국기행’ 등 다수 방송에 자문과 출연을 했던 그가 이번에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인 한국의 정원을 모티브로 책을 냈다. 은일과 합일의 조선의 정원에 초점을 맞춘 ‘한국 정원 기행’은 조선의 3대 민간 정원부터 별서·주택·별당 정원까지 아우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 정원은 언제부터였을까? 그에 앞서 정원(庭園), 정원(庭院), 원림, 별서, 별업 등 옛 정원과 연관된 명칭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부분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다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원은 인간가 자연, 시대와 문화의 관계가 시각적으로 드러난 곳”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견해다.

정원에 대한 정의부터 흥미롭다. 원(園)은 ‘큰 입 구(口)’ 자 안에 ‘흙 토(土)’와 ‘작은 입 구’(口), ‘옷 의(衣)’로 구성돼 있다.

“큰 입 구(口)는 정원을 둘러싼 울타리, 즉 담장을 뜻하며 서구의 ‘gan’과 같다. 토(土)는 흙을 의미하고, 작은 구(口)는 연못을 뜻한다. 의(衣)는 옷을 뜻하지만 여기선 여러 가지 식물을 가리킨다. 즉 정원은 울타리 안에 흙과 물, 여러 식물이 어우러진 공간을 의미한다.”

조선의 3대 정원에는 윤선도의 보길도 부용동 원림, 양산보의 담양 소쇄원, 정영방의 영양 서석지가 꼽힌다. 저자는 보길도 부용동 원림을 “섬 속의 낙원”, 소쇄원을 “완벽한 공간 구성”, 서석지는 “상서로운 돌의 정원”으로 본다.

별서 정원은 모두 9곳을 소개한다.

‘다산 정약용이 잊지 못한 별서’인 강진 백운동 별서를 비롯해 ‘왕이 찾은 인물을 위한 정원’ 담양 명옥헌 원림, ‘흥선대원군이 기지로 빼앗은 한양 제일의 정원’ 서울 석파정, ‘유배지로만 알려진 조선의 대표 정원’ 강진 다산초당, ‘은자의 고요한 물의 정원’ 화순 임대정 원림 등 각각의 정원이 주는 역사와 문화는 깊고 다채롭다.

가옥과 함께 달린 정원인 주택·별당 정원도 눈길을 끈다.

‘대학자가 태어난 고택의 파격적인 정원’ 아산 건재 고택, ‘하늘이 내린 명당의 별당 정원’ 강릉 선교장 활래정 외에도 ‘영남의 빼어난 경승지’ 봉화 청암정 등도 만날 수 있다.

이밖에 해남 녹우당, 경주 교동 최씨 고택, 남원 몽심재 고택, 진도 운림산방, 구례 운조루 고택에 대한 정원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아울러 우리 정원 보는 법을 별도로 소개한 부분도 있다. 현장을 답사할 때의 유용함뿐 아니라 직접 가지 않고도 글과 사진만으로도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사계절이 담긴 사진과 옛 그림은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미래의 창·1만7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