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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도시, 광주
2020년 05월 27일(수) 00:00
[박진현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지난 2012년 그룹 ‘버스커 버스커’가 부른 ‘여수 밤바다’의 노랫말 일부다. 그해 상반기 최대 히트곡으로 떠올랐던 이 노래는 여수를 전국에 알리는 국민가요가 됐다. ‘여수밤바다’의 서정적인 선율에 푹 빠진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를 불렀고, 그들 중 일부는 아예 밤바다를 ‘직관’하기 위해 여수를 찾았다. 그리고 지난 2018년, 로맨틱한 그곳 도시 야경에 심취한 관광객이 1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여수는 일약 유명 관광도시로 떠올랐다.



야간관광이 대세라는데



그렇다고 ‘여수 밤바다’만이 지금의 관광도시 여수를 만든 일등공신이란 의미는 아니다. 지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계기로 확충된 교통 인프라와 KTX 개통으로 접근성이 높아진 데다, 도시의 정체성을 살린 콘텐츠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사실을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수의 아름다운 밤을 전면에 내세운 콘셉트(concept)는 ‘신의 한 수’였다.

돌산대교에서 오동도로 이어지는 해안선에 오색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유람선과 해상케이블카를 운행하면서 여수 밤바다는 관광객들을 빨아들였다. 여기에 여수 밤바다를 거닐며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과 공연, 먹거리가 유혹하는 낭만포차와 낭만 버스킹까지, 그 모든 게 관광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낭만포차, 해상케이블카, 여수밤바다 및 낭만버스킹은 지난달 초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야간관광 100선’에 뽑히는 쾌거를 이뤘다. 그것도 하나뿐이 아닌 세 개가 동시에 뽑혔으니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까지 야간관광의 최고 강자는 서울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여수나 부산과 달리 삭막한 도시임에도 빼어난 건축물과 특색 있는 볼거리로 ‘서울의 밤’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이번 야간관광 100선에도 23곳이나 선정됐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안 보면 후회’라며 누군가 보내 준 유튜브 동영상(‘Seoulites’: 서울의 장소)을 접한 후 서울의 저력에 놀란 적이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 사진작가가 3년간 공들여 만든 3분 30초 분량의 동영상에는 숭례문, 경복궁, 올림픽공원, 서울역, 한강 등 대표적인 명소들의 야경이 담겨 있었다. 특히 타임 랩스 기법으로 찍은 영상은 국악 퓨전밴드의 경쾌한 음악 ‘쥐불놀이’와 어우러져 감흥을 더했다. 칙칙한 아파트 공사 현장이나 감추고 싶은 달동네의 ‘민낯’도 별이 내리는 마을로 변신했다. 도시의 치부까지 완벽하게 가려 주는 밤의 마법에 매료된 뷰어들은 ‘환상적이다’ ‘서울로 여행가고 싶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이처럼 야간관광은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힐링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근래 국내외 도시들이 저마다 건축물, 페스티벌, 미술관, 공연장, 전통시장, 산업유산 등을 엮어 밤 시간대의 볼거리로 내놓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서울시의 ‘밤도깨비 야시장’, 빛과 음악 및 기술이 어우러진 호주의 야간축제 ‘비비드 시드니’(Vivid Sydney), 베를린의 미술관들을 하룻밤에 둘러보는 ‘미술관 야행’(Long Nights of the Museums), 그리고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투어 등은 고부가 수익을 올리는 관광 브랜드로 이미 자리를 잡았다. 특히 뉴욕의 경우 지난해 야간관광에서 190억 달러(약 23조3000억 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는데 전담 부서인 ‘야간 라이프 사무소’(Office of Nightlifes)의 전문성과 마케팅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브랜드가 된 ‘여수 밤바다’



그렇다면 ‘빛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광주는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전통적인 관광 인프라가 취약한 데다 도시의 야경이나 밤 시간대의 콘텐츠 개발에도 소홀하다. 특히 ‘빛의 숲’을 콘셉트로 제시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와 같은 독보적인 자원을 활용하지 못해 야간관광의 모멘텀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뼈아픈 점은 광주의 밤을 각인시키는 브랜드 공연이나 상설 볼거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주는 앞으로 야간관광의 메카가 될 잠재력이 큰 도시다. 우선 ACC를 필두로 금남로 일대에 조성되는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벨트, 대인 예술야시장,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월봉서원 등 숨겨진 보석들이 많다. 또한 광주 동구를 중심으로 옛 도청 앞 5·18 민주광장을 주·야간 도시관광의 허브로 바꾸는 ‘광주문화광장’(Arts Square)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오는 7월이면 문화 광주의 미래를 열어 갈 광주관광재단도 설립된다. 이들 구슬들을 잘만 꿰어 낸다면 얼마든지 문화수도에 걸맞은 관광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야간 관광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민·관의 전략적 협업이 있어야 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는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 여행의 트렌드도 바꾸어 놓았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포스트 코로나’의 신성장동력으로 야간관광을 추켜든 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도시와 일상의 소소함을 새롭게 즐기는 방식, 야간관광에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아닐까.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