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범죄 영화 속 여성·아동 피해 심각성 파헤쳐
…범죄영화 프로파일
이수정·이다혜 외 지음
2020년 04월 24일(금) 00:00
‘가스등’, ‘적과의 동침’, ‘사바하’, ‘곡성’, ‘걸캅스’, ‘살인의 추억’, ‘기생충’, ‘팔려 가는 소녀들’….

위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범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연쇄 살인 사건, 일가족의 범죄, 아동 성매매 등 범죄를 주요 모티브로 한다.

‘범죄 심리학적 관점에서 영화 속 인물들을 분석하는 것은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박사의 견해다. 이 박사는 또한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힐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경기대 대학원 범죄 심리학과 교수인 이 박사는 최근 ‘씨네21’ 이다혜 기자 등과 함께 우리 사회 약자문제와 해결법을 다룬 책을 펴냈다.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이 그것. 네이버 오디오클립 문화예술 분야 1위였던 동명의 프로그램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범죄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매체는 관심없습니다. 여성이나 아동 같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다룬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책은 방송 제작진들이 직접 밝힌 진행과 제작에 관한 방송 비화가 더해져 우리 사회 약자 문제를 심도있게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콘텐츠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 최세희, 영화와 대중문화 글을 쓰는 조영주도 저자로 참여했다.

책은 범죄 영화를 분석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범죄 영화에 얼마나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피해자로 소비되고 소외된 사각지대가 어디인지를 주의 깊게 살핀다.

영화로 보는 사건들은 현실세계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한다. 서울의 전처 살인사건은 신고가 있었지만 공권력의 소극적 개입으로 피해자가 살해당한 경우다. 영미권에서는 몇십 년 간 폭행을 당해 만성화된 피해자 심리 상태를 ‘매 맞는 아내 증후군’ 기준으로 살핀다. 아내의 살해 동기가 분노가 아니라 공포임을 고려해 정당방위가 성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반의사 불벌죄로 인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다. 가정 폭력을 피해자보호보다 가정 보호에 초점을 둔 탓이다.

이 박사는 전 국민의 공분을 산 불법 동영상의 근원을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성을 사고파는 걸 범죄라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디지털 성범죄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영화 ‘범지 점프를 하다’, ‘꿈의 제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등은 아이들의 성 착취가 불법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배후에 랜덤 채팅 앱이 있다는 것이다.

“앱을 사용하는 여자아이들이 많아야 성인 이용자들이 앱으로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성인 남자들은 돈을 내고 여자아이들은 돈을 안 내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영화로 보는 사건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되는데, 특히 여성과 성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사진은 영화 ‘곡성’ 장면.
책에서 다루는 영화들은 우리 사회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미저리’, ‘걸캅스’, ‘살인의 추억’ 등은 스토킹 방지법과 온라인 성범죄 단속을 위한 제한적 함정 수사의 필요성을, ‘사바하’, ‘곡성’ 등은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권위와 복종의 문제를 지적한다. ‘기생충’과 ‘조커’를 통해서는 빈곤계층과 적대주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책에는 이렇듯 이다혜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과 이수정 박사의 냉정한 분석 등이 펼쳐진다. 영화 속에서 피해자로 소비됐던 여성과 아이들, 약자의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른다. <민음사·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