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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향 초대석]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반려생물인 나무는 가장 좋은 친구…내 마음의 나무 심으세요”
풀과 나무 마음에 담은 식물학자
광릉 숲에서 30여년 가까이 연구
광릉요강꽃·장수하늘소 복원·증식
통일 후 북한 산림생태계 복원 대비
2020년 04월 21일(화) 00:00
진솔한 글솜씨로 풀과 나무의 다양한 세계를 소개하는 이유미 국립 수목원장.
‘서울 토박이’ 여학생은 풀과 나무를 좋아했다. 대학에 들어가 산과 들, 섬을 두발로 찾아다니며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생명에 대해 사랑의 깊이를 더해갔다. 식물학자가 된 그는 광릉 숲에서 식물 연구에 힘쓰는 한편 풀과 나무의 다양한 세계를 진솔한 글 솜씨로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국립 수목원 이유미(58) 원장의 이야기다.

“수목원 봄의 절정은 4월말에서 5월초입니다. 도심보다 늦지요.”

이 원장은 국립 수목원 임업연구사로 처음 일을 시작한 199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30여년 가까이 광릉 숲의 사계절 변화를 지켜봐왔다. 수도권 허파’로 불리는 광릉 숲은 식물(944분류군)과 곤충(3977분류군), 조류(180종), 버섯(699종) 등 총 5800여 분류군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산림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이다. 유네스코는 2010년 6월 광릉 숲 2만4465㏊(핵심지역 755㏊, 완충지역 1657㏊, 전이지역 2만2053㏊)를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또한 우리나라 임업의 산역사이며 산실이다. 특히 콘크리트 숲에 갇혀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힐링’ 공간이기도 하다. 지난해의 경우 ‘방문예약제’를 통해 37만여만명이 방문했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산림박물관 등 실내 관람시설과 ‘광릉숲길’(봉선사 입구 ~수목원 정문)을 임시 폐쇄했다.



광릉숲을 대표하는 ‘광릉 요강꽃’(위)과 ‘장수 하늘소’.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 복원·증식 성공=원장실 한쪽 벽면에는 국립 수목원 구역을 보여주는 대형 지도와 함께 광릉 숲을 대표하는 난초과 희귀식물 ‘광릉요강꽃’(멸종위기식물 Ⅰ급)과 ‘장수하늘소’(천연기념물 제218호), ‘크낙새’(천연기념물 제197호) 사진이 부착돼 있다.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는 국립수목원 연구진의 지속적인 연구 끝에 복원 증식에 성공했지만 딱따구리 일종인 크낙새는 광릉 숲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1932년 광릉 숲에서 처음 발견된 ‘광릉요강꽃’은 무분별하게 몰래 캐가는 사람들로 인해 멸종위기를 맞았다. 연구진은 20여년에 걸쳐 생태조사와 뿌리에 공생하는 균, 매개곤충들을 연구해 복원·증식에 성공했고 관련 논문을 2019년 1월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또 개원 20주년을 맞은 같은 해 5월에 희귀·특산식물 전시원내에 ‘복주머니란 속(屬) 전문 전시원’을 조성, 일반인들에게 공개해 호평을 받았다. ‘광릉요강꽃’은 어린이 날(5월 5일) 전후에 개화한다.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던 장수하늘소의 경우 갈참나무를 기주식물(곤충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식물)로 삼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생육기간을 자연조건(5~7년)보다 3분의 1로 단축시키는 원천기술을 개발, 지난해 7월에는 알에서 우화시킨 성충 2마리를 방사해 복원까지 성공을 거뒀다.

“광릉요강꽃 뿐만 아니라 털복주머니란, 복주머니란 등 복주머니란 집안이 다 희귀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 그룹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요. 저희가 복주머니란 그룹을 다 수집해서 증식에 성공했어요. 작년에 전시원을 개원했을 때 평생에 그 꽃 한번 보고 싶었던 분들이 몰려오셔서 장관이었어요. ‘수목원의 진정한 기능이 이런 거구나’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 원장은 역점사업으로 2014년 3월 경기도 양평군에 ‘유용식물 증식센터’을, 2016년 10월 강원도 양구군 ‘펀치 볼’ 인근에 ‘DMZ 자생식물원’을 개소했다. ‘유용식물 증식센터’는 산림식물자원을 활용한 신성장동력 창출이라는 비전아래 고부가 품종소재 개발과 보전복원을 위한 증식기술 시스템 구축방안을 연구한다. 또 ‘DMZ 자생식물원’은 동서 생태 축을 연결하는 비무장지대의 다양한 식물자원과 북방계 지역의 고산식물 자원을 수집·보전해 통일 후 북한지역 산림생태계 복원을 대비하고 있다.

“‘DMZ 자생식물원’은 저희 연구자들이 DMZ를 조사하고 채종한 씨앗으로 식재해서 조성한 식물원이에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꽃으로 하는 가장 아름다운 통일준비입니다.”



국립수목원 전문전시원중 하나인 수생(水生) 식물원 봄풍경. <국립 수목원 제공>
◇풀과 나무를 마음에 담은 행복한 식물학자 =이 원장은 식물분류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식물학자이면서 ‘칼럼니스트’로 유명하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공부의 즐거움’(위즈덤하우스 刊)에 실린 ‘풀 한 포기의 행복’에서 “세상에 많은 공부 가운데서 유독 식물을 공부하게 된 것은 필연과 우연이 어우러진 운명 같다”고 말한다.

이 원장은 서울대 산림자원학과에 진학해 평생의 은사를 만났다. 해방이후 우리나라 현대 식물분류학의 학문적 정립에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 식물분류학계의 거목인 고 이창복(1919~2003) 교수였다. 대학원때 지도교수였던 은사는 그에게 꽃을 공부해보라고 권했다. 1986년 대학원에 막 들어갔을 때 참여한 ‘한국의 야생화 대탐사’ 프로그램은 ‘식물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이때의 개안(開眼)을 ‘공부의 즐거움’에서 “앞으로 내가 평생 공부할 대상을 논문이나 도감의 글자와 그림이 아닌, 이땅 곳곳에서 피고 지는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식물들을 보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1992년 박사학위 논문으로 ‘한국산 조팝나무속(屬) 식물의 분류학적 연구’를 썼다. 흑산도와 설악산, 가야산 등 전국 각지 조팝나무의 형태적인 특성과 화학성분(플라보노이드)을 이용해 분석해서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조팝나무를 15종류로 정리했다.

1994년 국립 수목원에 발을 들여놓은 후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희소·멸종위기 식물 보전 ▲전국 생물 다양성 조사 ▲국가표준식물명 제정 ▲한반도 식물지 사업 등 다채로운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듬해 틈틈이 모은 자료와 ‘젊은 식물학자의 식물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쓴 ‘우리나무 백가지-꼭 알아야 할 우리 나무의 모든 것’(현암사 刊)을 펴냈다. 25년 전에 출간한 이 책은 2015년 개정증보판을 낼 정도로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2002~2003년에는 한국일보에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했다.

그에게 숲은 더불어 사는 ‘녹색우주’였다. 책을 내고 칼럼을 쓰며 그의 삶도 바뀌었다.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후기에서 “‘우리 나무 100가지’라는 저의 첫 책을 만들면서 얻은 큰 소득이 머리로 나무를 공부해 지식만을 쌓은 연구자에서, 비로소 나무 한그루 한 그루를 마음에 담은 행복한 식물학자로 거듭났다면, 이제는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의 글을 통해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의 존재의 아름다움을 읽고 느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식물에 대한 진정한 개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술회한다.



전나무숲길.
◇태풍에 죽은 나무, 선생님의 인생관 바꿔=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그는 칼럼에서 2010년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로 인해 쓰러진 전나무를 보고 수십 년간 교단에 섰던 한 교사의 인생관과 철학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태풍이 지나가면 넘어졌거나 부러진 나무들, 그리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나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숙제입니다. 광릉 숲에서 이런 나무들은 대하는 첫째 기준은 ‘그대로 둔다’, 두 번때 기준은 ‘더 우선인 게 안전’입니다. 태풍 ‘곤파스’때 생태관찰로에 뿌리를 그대로 드러낸 채 쓰러진 전나무 옆에 ‘고사목도 숲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라는 팻말을 세워뒀습니다. 이 두 줄의 글이 수십 년 교직에 몸았던 한 선생님의 인생관과 삶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죽어서 아무 쓸모없다고 생각한 나무처럼 말썽을 피우며 친구들과 학교에 피해를 준다 싶어 미워했던 학생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학교로 돌아가 ‘우리 학생 모두가 다 행복해지는 그날을 위하여’라고 크게 써붙여놓고 실천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40년 가깝게 산과 들에서 식물, 나무와 함께 해온 이 원장에서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처음 생각난 단어는 ‘위로’였고, ‘설레임’도 떠올랐지만 ‘깃발’입니다. 제 삶에서 찾고자 했던 일을 잠시 잊고 스스로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그 만의 특별한 모습을 잊지 않고 매력을 품어내는 숲의 생명들이 깃발처럼 흩날리며 머뭇거리는 저를 일깨우고 가는 방향을 다시 보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원장이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나면 전체를 만들어가는 일 대신 전체를 만들어 가는데 빠진 이를 채우는 존재가 되고 싶다. 또 나무처럼 나이 들고자 한다. 스스로 생각에 갇혀 완고해지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의 행복을 잊지 않고, 어려울 때 아름답게 발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요즘 위안과 행복을 찾고, 함께 성장하는 ‘반려식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코로나 19’ 여파로 힘들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부탁드렸다.

“우리들의 삶에 여러 가지 색깔로 풀과 나무를 들여왔으면 합니다. 그런 일들이 육체적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면역력을 높이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자연을 반려(伴侶)로 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반려생물인 나무는 제가 겪어본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알맞은 곳에 내 마음이 가는 나무를 골라 적절한 곳에 심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내 나무를 정해 마음을 주고 돌보는 일을 해도 됩니다. 하지만 나무를 심어놓고 뒤돌아보지 않거나, 산에서 (희귀식물을) 캐거나 돌을 주워다 내 옆고 두고 혼자 보는 것은 진정한 반려문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도 포천=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