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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가져다 준 일상의 소중함
2020년 04월 01일(수) 00:00
[채 희 종 편집부국장·사회부장]
비록 며칠간이나마 참 편했다. 출퇴근길 탁 트인 도로는 일상의 혼잡을 씻겨 줬고, 줄 서지 않고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였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의 ‘나홀로’ 관람은 그야말로 ‘인생 컷’이었다. 그러나 한가함을 누리는 것도 하루 이틀일 뿐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만나지도, 모이지도, 만지지도’ 않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생뚱맞은 ‘사회적 거리 두기’, ‘언택트’니 ‘비대면’이니 평소 쓰지도 않는 말을 날마다 보고 듣고 있다. 감염 예방 차원의 접촉 금지를 뜻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는 코로나 전쟁에 임하는 전 세계인에 대한 명령어가 됐다. 이 명령어는 접촉(contact) 금지를 뜻하는 언택트(untact: un+contact의 합성어), 즉 ‘마주 보고 대하지 않는다’는 ‘비대면’(非對面)의 규칙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

재택근무 중인 아내는 온라인 강의를 듣는 두 아들과 하루 종일 씨름하고, 필요한 것은 온라인 쇼핑으로 받는다. 퇴근길 먹거리 구매는 내 몫이다. 회사 일을 마치는 대로 귀가하고, 주말에도 외출 대신 가족이 함께 식사하기 때문이다. 벌써 한 달가량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온 가족이 조심하는 가운데 얼마 전에는 큰애가 감기에 걸리면서 잠시나마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게다가 인근에 사시는 어머니마저 이상 증세를 보여 깜짝 놀랐지만, 그나마 다행으로 감기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는 감기가 옮을까 아들이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고, 손자들이 간다고 하면 더욱 역성을 내며 결사반대하신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됐는지 전화까지 걸어 ‘오지 말라’ 신신당부하신다. 그렇게 보고 싶은 손자일 텐데, 사랑하는 손자를 나로부터 지키는 방법이 ‘거리 두기’임을, 할머니는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다.

몇 주째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고, 있던 모임도 취소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텔레비전의 ‘코로나19’ 비상 특보에서는 연일 지역 내 감염과 개학 연기에 관한 국내 뉴스는 물론 하루 사망자 1000명, 확진자 수 하루 1만 5000명, 2주 외출 금지, 3인 이상 모임 금지, 무인도 격리, 스페인 공주 코로나19 감염 사망, 거리 두기 위반자 매질, 국경 봉쇄 등 마치 전염병 영화의 장면인 듯한 외신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6피트(1.83m)의 안전거리를 지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확진 판정을 받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2m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네덜란드 정부는 국민들에게 1.5m 거리를 유지하라는 휴대전화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며칠 전 밤, 코로나 뉴스에 물려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걸린 영화 한 편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파이브 피트’.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유전성 불치병을 앓는 젊은 연인들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였다. 폐가 절반밖에 기능하지 않는 이 환자들은 생존을 위해 폐 이식을 받아야 하지만 그나마 이식된 폐의 수명은 5년뿐인 시한부 인생이다. 병원에서 만난 스텔라(여)와 윌은 첫눈에 반하지만, 서로의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기침이 날아가는 거리인 6피트를 유지한다. 마스크와 장갑 착용도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다.

사랑이 깊어 가지만 이들은 키스를 할 수도, 안을 수도, 심지어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스텔라가 선택한 것은 6피트에서 딱 1피트만큼 거리를 좁히는 것이었다. 이날부터 둘은 5피트짜리 당구 채의 양 끝을 잡은 채 데이트를 한다. 실수로 스텔라가 연못에 빠지게 되고, 월은 스텔라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게 된다. 스텔라는 의식을 찾지만 윌은 감염으로 인해 사경을 헤매게 된다. 어렵사리 건강을 회복한 윌은 “너를 나로부터 지키기 위해 떠난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다른 병원으로 옮긴다.

“나 괜찮으니 오지 마라. 감기 걸리니까 애들 데려오지 마. 할머니 괜찮다고 해.” 행여나 손자들이 감기에 옮을까 봐, 당신 집에 오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늘 당연했던 일상이, 늘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어김없이 모란이, 벚꽃이, 그리고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이 왔다. 화사한 꽃들이 다 지고 봄날이 갈 때, 코로나도 함께 데려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2m 떨어진 채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