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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의 창] 2020년에 해야 할 일
2020년 01월 09일(목) 00:00
한 해를 보낼 때면 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고 말하는데, 2019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검찰이 사건의 중심에 선 해였다는 점이다. 검찰 자체가 사건의 중심이 되는 것은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에서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나라 국민들은 검찰 수장의 이름을 모른다. 그것이 정상이다. 먹고살기 바쁜 일반 국민들이 검찰 수장의 이름을 알 이유가 무엇이 있겠으며, 심지어 부장검사나 차장검사의 이름을 왜 알아야 하는가? 이는 그 자체로 이 나라 검찰이 비정상적 조직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예전에는 국민들이 웬만한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알았다면 지금은 3선·4선이라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제도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정치의 수요가 적어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옛날에 비해서 국회의원들의 권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오직 검찰만 시대의 흐름과 거꾸로 여전히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또한 이를 자의적·선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검찰 자체가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작년 말 공수처법이 통과되었으니 이제 곧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국가 체제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제도의 뿌리를 찾아보면 대부분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에 가 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나 조선에서는 현재의 검찰 같은 권력기관은 상상도 못했다. 수사권은 당연히 여러 기관에 분산시켜 정의를 실현하는 한편 권력기관을 상호 견제시켰다. 현재의 검찰과 비슷한 조직이 사헌부라면 의금부는 곧 출범할 공수처와 비슷한 조직이었다. 만약 사헌부에서 조직 이기주의나 조직 구성원의 사익을 위해 수사를 방기하거나 자의적으로 수사할 경우 의금부에서 즉각 사헌부 관료를 구속했다. 의금부에서 같은 행위를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법무부격인 형조와 경찰청격인 포도청에도 수사권이 있었다. 모든 권력기관은 철저한 상호견제로 부패와 불법을 방지했다. 조선조 500여 년 동안 권력형 부정부패를 찾기 힘든 것은 혼자 있을 때도 삼간다는 신독(愼獨)을 좌우명으로 삼은 사대부들의 처신도 처신이지만, 상호 견제를 기본으로 권력기관을 설계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원칙을 무너뜨린 것은 조선총독부였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해서 검사에게 수사권·기소권을 독점시켰다. 이는 독립운동가를 쉽게 때려잡기 위한 것이었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괴물 검찰의 탄생이었다. 필자는 공수처가 출범하기 전에 그간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믿고 불법과 부정을 저지른 검사들의 자기 고백 운동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이 경우 정상을 참작하자는 국민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 민주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두 기관이 검찰과 법원이다. 그 전에는 법률적 근거는 없었지만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에서 파견 나간 조정관이 검찰·법원의 상위에 있었다. 민주화 바람에 정보기관의 조정관들이 철수함으로써 비로소 검찰과 법원이 정상적인 국가기관이 될 수 있었다. 이때 검찰·법원이 정보기관 조정관들이 차지하고 있던 권력을 국민들에게 되돌려 주었다면 지금 두 국가 기관이 OECD 국가들 중 최하위의 신뢰도를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0년은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제는 대한제국 강점 직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에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어 ‘조선반도사’를 편찬했다. 아직도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이 편찬한 ‘조선반도사’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 무대였던 대륙과 해양을 삭제하고 역사 강역을 반도로 축소시켰다. 박근혜 정권 때 만든 국정교과서는 물론 국정·검인정을 막론한 역대 국사 교과서는 이 ‘조선반도사’의 아류였다. 곧 공개될 검인정 교과서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1주년을 맞는 2020년은 권력기관이 정상화되는 원년이자, 식민사학이 청산되고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이 우리 국민들의 일반적 상식이 되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