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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이와 패딩
2019년 11월 18일(월) 04:50
1988년 3월 15일 군에 입대해 강원도 화천의 모 부대로 배치받았다. 4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의 날씨에 신병교육대 추위를 이기게 해 준 것은 일명 ‘깔깔이’였다. 야전복 안에 덧입는 옷으로 공식 명칭은 방상내피(防霜內皮)다. 솜으로 누빈 일종의 패딩이지만 내복에다 전투복까지 여러 겹 겹쳐 입으면 그럭저럭 강원도 맹추위도 견딜 만했다.

신병교육대 훈련 중 아버지 부음을 듣고 광주로 내려올 때도 입고 있었던 옷이다. 서울 상봉터미널을 거쳐 광주행 버스에 올라서야 덥다고 느꼈고 깔깔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눈물로 깔깔이와 인연을 맺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춥다는 강원도 대성산과 화악산 사이 영하 30도의 겨울을 두 번이나 이겨 내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깔깔이는 원래 미군 군복인 ‘M-65 파커’에서 비롯됐다. 1965년부터 보급된 야전 재킷으로 탈부착이 가능한 방한내피가 있었는데 이것이 깔깔이의 원조다. 울 소재로 만들어 피부에 닿는 느낌이 까칠까칠해 깔깔이라고 부르게 됐다. 우리 군에선 울 대신 나일론으로 깔깔이 외피를 만들어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다.

패딩이 없던 시절 깔깔이는 사회에서도 방한복으로 인기를 누렸다. 제대한 군인들이 가지고 나온 노란색 깔깔이는 추운 겨울 가족들이 돌려 가면서 입던 추억의 패딩이었다.

국방부가 강원도와 경기도 등 전방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처음으로 패딩 점퍼를 보급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병사 12만4000명에게 대한민국 육군을 의미하는 ‘ROKA’가 새겨진 패딩 점퍼를 지급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보온성은 기본이고 유행하는 디자인에 생활 방수 기능까지 갖춰 지급받은 병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만족도가 91점이나 됐다.

2년 전부터 롱 패딩이 젊은이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등장하면서 ‘등골 브레이커’ 계보를 잇고 있다. 올해는 숏 패딩이 유행이라지만 유명 브랜드 패딩은 한 벌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이에 비해 군용 패딩 점퍼 단가는 개당 6만 원이 안 된다고 한다. 거품을 쏙 뺀 군용 패딩 점퍼가 깔깔이의 뒤를 이어 장수하는 추억의 옷이 됐으면 좋겠다.

/장필수 전남본부장 bun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