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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아픈 세상 위로해주는 감정의 서비스맨”
‘풀꽃·1’은 초등학교 교장때
학생들과 풀꽃그리기 공부한 경험 담겨
선생 아니었으면 못 썼을 것
교직은 ‘직업’이고 시 쓰기는 ‘본업’
2014년 ‘공주 풀꽃문학관’ 개관
올 소월시문학상 대상 선정되기도
2019년 11월 12일(화) 04:50
‘풀꽃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나태주 시인은 50년동안 독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많은 시를 발표해 왔다. 문학관앞에 설치된 자전거 조형물에 ‘풀꽃’시가 새겨져 있다.
공주 풀꽃문학관을 찾은 독자들과 풍금(오르간)을 연주하며 ‘풀꽃’을 부르고 있는 나 시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74) 시인의 시 ‘풀꽃·1’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50여 년 동안 한결같이 시와 함께 해 온 그를 ‘풀꽃시인’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다. 그는 “시인은 아프고 우울한 세상을 위로해주는 감정의 서비스맨”이라고 말한다. 충남 공주시 반죽동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내년 등단 50년을 맞는 나 시인을 만났다.



◇2014년 ‘공주 풀꽃문학관’ 개관= “풀에 피는 모든 꽃은 다 풀꽃이에요. 또 하나 함유된 의미를 따져보면 화려하지 않은 것, 작은 것, 버려졌거나 가꾸지 않는 것… 그냥 그런 거예요. 마이너(minor)중의 최하의 마이너를 풀꽃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태주(74) 시인은 공주 풀꽃문학관 비탈길을 걸어 올라오며 이러저러한 여러 꽃들과 눈을 맞춘다. 층층꽃과 구절초, 천일홍, 클레마티스 등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꽃과 나무만이 문학관 화단의 주인공은 아니다. 이름모를 작은 풀들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간혹 문학관을 찾아온 독자들이 이를 잡초인줄 알고 일부러 뽑아버려 시인을 놀라게 한다.

문학관은 충남 공주시 반죽동 나지막한 산허리에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에 지어져 일본군 헌병대장 관사로 사용됐던 일본식 단층 목조건물이다. 해방되고 나서 개인집으로 오래 쓰이다가 공주시에서 매입해 복원공사를 한 후 2014년 10월에 ‘공주 풀꽃문학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내부에 들어서면 시인이 직접 그려 만든 12폭 풀꽃 병풍, 오르간이 눈에 들어온다. 마침 40대 여성 두 명이 문학관을 찾았다. 애독자임을 밝힌 그들은 시인에게 가지고 왔던 시집을 내밀었다. 시인은 시 ‘풀꽃·1’ 전문을 꼼꼼하게 적은 후 사인을 했다. 그리고 시인은 풍금(오르간) 앞에 앉아 악보를 펼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독자 두 사람도 시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43년간 초등교육과 시 창작 병행=나 시인은 공주사범학교(공주교육대 전신)를 졸업하고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 3개월 동안 초등학교 교단에 섰다.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대숲 아래서’라는 작품으로 등단한 후 교직에 있으면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다. 교직은 ‘직업’이고 시쓰는 일은 ‘본업’이었다.

시 ‘풀꽃·1’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하던 지난 2002년에 학생들과 풀꽃그리기 공부를 한 경험을 오롯이 담은 작품이다. 학생들이 하도 대충대충 풀꽃을 그리기에 그가 말했다.

“얘들아! 풀꽃을 그릴 때는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는 풀꽃이라고 예쁜 거란다. 한 개의 풀꽃을 오래 들여다보아야 사랑스런 거란다. 너희들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단다.”

교장실로 돌아온 나 시인은 아이들에게 말한 대로 간결하게 정리해 ‘풀꽃·1’이란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그래서 그는 이 시를 ‘풀꽃한테서 빌려온 시’, ‘나하고 같이 풀꽃그리기 공부를 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선물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선생 아니었으면 못써요. ‘풀꽃’ 시는 중요한 게 있어요. 첫째는 바라보거나 사는 세계가 자연친화적이고 어린 세계이고 그럼으로써 보편성을 가질 수 있었고, 둘째는 말하는 어법이 문어체(文語體)가 아니고 구어체(口語體), 입말체라는 게 중요해요.”

‘풀꽃·1’은 속도 지향적·성과제일주의로 치닫는 한국사회에 풀꽃같이 ‘소소하고 보잘 것 없지만’ 아름다운 것에 눈길을 두자고 말한다.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을 장식한 많은 글귀 가운데 ‘풀꽃·1’은 사람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는 ‘풀꽃시인’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최근 시인은 도서출판 문학사상사가 제정한 ‘제30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지난 2월에 펴낸 신작 시집 ‘마음이 살짝 기운다’이다. 시상식은 12월에 열릴 예정이다.

◇“시는 세상에 보내는 시인의 러브레터”=시인은 1945년 3월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5살에 연애편지를 쓰면서 시인을 꿈꿨다. 26살이던 1971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2년 후에 첫 시집을 냈다.

시인은 12년 전인 2007년 정년퇴임을 6개월 앞두고 쓸개가 터져 생사의 고비에 섰다. 105일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주사약으로만 버텨야 했다. 6개월간의 죽음의 터널을 빠져나와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에게 사람들은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20대 중반에 실연당했을 때와 50대 초반에 전문직(장학사)로 나갔다가 일선 학교로 복귀했을 때와 더불어 60대 중반에 겪은 역경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시인의 인생관이 바뀌고, 세상에 대한 태도가 바뀌고, 시 어법이 바뀌었다. 특히 시를 시처럼 맞춰서 쓰는 게 아니라 조금 부족한 듯, 헐거운 듯, 되는대로 썼다. 투병이후에 ‘멀리서 빈다’와 ‘사랑에 답함’, ‘묘비명’, ‘꽃들에게 안녕’ 같은 시들이 쓰여졌다. 그에게 시는 무엇이고, 시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시는 세상에 보내는 시인의 러브레터에요. 끝없이 보내는 연애편지. 울렁이고, 깨끗하고, 사랑하고, 좋은 마음이 시의 소재 ‘What’(무엇을)입니다. 어떻게 쓰느냐? 예쁘게, 사랑스럽게, 정성스럽게가 방법론 ‘How’(어떻게)입니다. 시인을 나는 ‘러브레터를 보내면서 세상 사람들의 감정을 달래주고 도와주는 서비스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 줄이면 ‘감정의 서비스맨’이 시인이다.”

◇한 해 동안 200여 차례 강연 가져=시인은 시를 방안에 앉아서 쓰지 않는다. 돌아다니면서 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도 쓰고, 택시나 기차로 이동하면서도 쓴다. 스마트 폰에 메모하거나, 몸에 지니고 있는 종잇조각에 급하게 적기도 한다. 그는 ‘시2’에서 “온몸을 인생에 적셔/ 그 붓으로 꿈틀꿈틀/ 몇 마디 되다만 문장”이라고 했다.

“많이 움직이면 시가 많이 나와요. 앉아서 쓰는 시는 정태적(靜態的·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이고, 움직이면서 쓰는 시는 동태적(動態的)이에요. 움직이면서 쓰면 시의 배경이나 시속에 움직임이 들어가요. 내가 시를 많이 쓰는 것은 물이 많이 고이니까 많이 떠내는 거예요.”

시인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해 강연만 200여 차례에 이른다. 버스나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찾아다닌다. 주제를 묻지 않고, 거리를 묻지 않고, 강연료를 묻지 않는다. 그의 시를 읽는 학교현장에서도 10대 청소년들의 거친 언어가 줄어드는 등 자그마한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시인은 내년에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시인은 ‘나이 들어’ 시를 쓰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애 같은 마음’과 ‘호기심’이라고 강조한다.

“호기심은 천진한 마음이고, 새롭게 보는 마음이고, 놀랍게 보는 마음이에요. 천진하고, 새롭고, 놀랍고 그렇게 시를 쓰면 시가 좋아지는 거예요.”

/공주=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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