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너희 죄가 너를 다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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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를 모세오경이라고 부른다. 이중 ‘민수기’는 당초 히브리어로 ‘광야에서’라는 뜻의 ‘브미드발’이라고 불렸는데, 인구 조사 기록과 희생 제물 수 등 숫자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숫자들’이라는 뜻의 ‘아리트모이’라고도 불렀다. 구약성서를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대목에 주목해 민수기(民數記)라고 옮겼기 때문에 우리말 성서도 민수기가 되었다.
그런데 민수기 32장 23절에는 “너희 죄가 반드시 너를 다시 찾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아무리 감추어도 지은 죄가 반드시 그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구절을 한자 성어로 바꾸면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쓴 ‘춘추’(春秋)에 주석을 단 ‘춘추좌씨전’의 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서기전 577) 조에 나오는 구절인데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것(징악이권선, 懲惡而勸善)은 성인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역사서를) 편찬할 수 있겠는가?”라 했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면서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했다”(‘맹자’, ‘등문공 하’)라고 말한 것이다.
세상은 악한 자가 더 자주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고도 벌을 받기는커녕 승승장구할 때 사람들은 과연 역사의 신이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현재 일본 극우파 및 그 추종자들의 행태가 이를 말해 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큰 틀은 중국을 반공의 보루로 삼고, 일본을 민주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승리하리라는 전제 아래 소련의 남진을 중국에서 막고, 일본 내의 전범 등을 처벌해서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예상과 달리 국공내전은 모택동(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전후 동아시아 정책을 수정해야 했다. 중국 대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는 역코스(Reverse course) 정책이었다. 미군정은 감옥에 갇혀 있던 전범들을 대거 석방하고 전범 관련자들에게 내렸던 공직 추방령을 해제시켜 이들이 다시 공직에 진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A급 전범으로 투옥되어 있던 기시 노부스케(안신개, 岸信介)가 석방되어 급기야 수상(1957~1960)까지 되었는데, 그가 바로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이때 석방된 A급 전범 중에 주목해야 할 인물이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 1899~1995)다. 석방 후 도박의 일종인 경정(競艇)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사사카와 재단’을 만들었는데,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 ‘남경(南京) 대학살은 없었다’ 등 각종 역사 왜곡을 주도한 단체다. 전범 이름이 들어간 재단 명칭이 세력 확장에 장애가 되자 이름을 ‘일본 재단’(The Nippon Foundation)으로 바꾸었다. 사사카와 료이치가 1995년 사망한 후 셋째 아들인 사사카와 료헤이(笹川陽平)가 재단 이사장이 되었는데, 그는 일본의 극우파 역사 교과서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든 ‘새역모’ 모임 회장도 맡고 있다.
이 사사카와 재단은 국내 학계에도 대거 침투해 있다. 해방과 동시에 해체되었어야 할 식민사학을 비롯해 일본 극우파를 추종하는 학문 경향이 여태껏 건재한 이유 중에는 언론을 비롯해서 식민사학과 한 몸인 각종 카르텔과 함께 일본이 국가 또는 사사사카 재단처럼 민간 차원에서 펼친 공작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정신세계를 갉아먹고 있는 이런 근본적 문제들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 현상적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
이 구절을 한자 성어로 바꾸면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쓴 ‘춘추’(春秋)에 주석을 단 ‘춘추좌씨전’의 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서기전 577) 조에 나오는 구절인데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것(징악이권선, 懲惡而勸善)은 성인이 아니면 누가 이렇게 (역사서를) 편찬할 수 있겠는가?”라 했다. 공자가 ‘춘추’를 편찬하면서 악을 징계하고 선을 권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했다”(‘맹자’, ‘등문공 하’)라고 말한 것이다.
현재 일본 극우파 및 그 추종자들의 행태가 이를 말해 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큰 틀은 중국을 반공의 보루로 삼고, 일본을 민주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장개석(蔣介石)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국공내전(國共內戰)에서 승리하리라는 전제 아래 소련의 남진을 중국에서 막고, 일본 내의 전범 등을 처벌해서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예상과 달리 국공내전은 모택동(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승리로 끝났고, 미국은 전후 동아시아 정책을 수정해야 했다. 중국 대신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는 역코스(Reverse course) 정책이었다. 미군정은 감옥에 갇혀 있던 전범들을 대거 석방하고 전범 관련자들에게 내렸던 공직 추방령을 해제시켜 이들이 다시 공직에 진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A급 전범으로 투옥되어 있던 기시 노부스케(안신개, 岸信介)가 석방되어 급기야 수상(1957~1960)까지 되었는데, 그가 바로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이때 석방된 A급 전범 중에 주목해야 할 인물이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 1899~1995)다. 석방 후 도박의 일종인 경정(競艇)사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사사카와 재단’을 만들었는데,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었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 ‘남경(南京) 대학살은 없었다’ 등 각종 역사 왜곡을 주도한 단체다. 전범 이름이 들어간 재단 명칭이 세력 확장에 장애가 되자 이름을 ‘일본 재단’(The Nippon Foundation)으로 바꾸었다. 사사카와 료이치가 1995년 사망한 후 셋째 아들인 사사카와 료헤이(笹川陽平)가 재단 이사장이 되었는데, 그는 일본의 극우파 역사 교과서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든 ‘새역모’ 모임 회장도 맡고 있다.
이 사사카와 재단은 국내 학계에도 대거 침투해 있다. 해방과 동시에 해체되었어야 할 식민사학을 비롯해 일본 극우파를 추종하는 학문 경향이 여태껏 건재한 이유 중에는 언론을 비롯해서 식민사학과 한 몸인 각종 카르텔과 함께 일본이 국가 또는 사사사카 재단처럼 민간 차원에서 펼친 공작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정신세계를 갉아먹고 있는 이런 근본적 문제들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고 현상적 문제에만 집착한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