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선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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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 선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
장편 ‘진이, 지니’ 출간 정유정 작가
사육사 영혼이 유인원 몸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3일간의 사건
자료조사 6개월, 집필 1년6개월 걸려…판타지 기법 첫 도입
2019년 05월 27일(월) 00:00
‘이야기꾼’, ‘흥행보증수표’ 작가 정유정이 신작 장편을 들고 돌아왔다.

정 작가가 3년 만에 펴낸 소설은 ‘진이, 지니’(은행나무). 판타지 장르에 가까운 소설은 사육사의 영혼이 유인원 보노보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책 출간 소식을 듣고 기자는 오랜만에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예상했던 대로 바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후 작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신작 소식을 매개로 그동안의 근황을 비롯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른 인터뷰 때문에 바로 연결이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선 조금 지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책을 펴내고 난 뒤라 인터뷰 약속이 적지 않은 듯 했다.

정 작가는 그녀의 책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언제나 기대 이상을 선물하는 작가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정유정이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번 장편 또한 사흘간에 일어나는 일을 스피드한 문체와 촘촘한 플롯으로 완결했다. 기존의 고도의 긴장감과 극한의 스릴러와는 달리 “경쾌하고 자유롭게 썼다”고 한다. 아마도 판타지 장르가 주는 이야기의 확장성과 무관치 않을 터였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꿈속’으로 줄달음하는 내 상상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책을 덮었다. 내친 김에 새 노트를 꺼내 이렇게 썼다.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와 개요를 전력 질주하듯 썼다”고 밝혔다.

리얼리즘 기법으로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상상력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시도하는 판타지 차용에 대해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이야기에 적합한 방식이라면 가져다 쓴다”고 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사육사의 영혼이 의식을 잃은 유인원 보노보(지니)의 몸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후의 사건을 담았다. 한마디로 “죽음 앞에 선 한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자, 삶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유인원 사육사로서 마지막 출근을 하던 날, 진이는 뜻밖에 침팬지 구조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구조 작업에 착수하려던 순간 진이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짐승이 침팬지가 아니라 보노보임을 알게 된다. 마취총에 맞은 보노보(지니)를 안고 차에 탑승한 진이는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하고 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설의 화자는 진이와 그녀의 옛 남자 친구 김민주를 교차한다. 두 개의 영혼이 교차하는 혼돈과 혼란 속에서 진이는 본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한다. 과연 진이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보노보의 이름을 ‘지니’라고 명명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서사 전개와 관련이 있다. 여자 주인공 진이와 그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보노보 지니는 삶과 죽음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를 상징한다.

숨이 멎을 듯한 진지한 이야기지만, 그러나 작가는 “따스하고, 가볍고, 경쾌하다”며 웃는다. 이번 소설을 쓰는 데 자료 조사에 6개월, 집필에는 1년 6개월이 걸렸다. “원래는 전혀 동물에 관심이 없었지만” 오로지 소설을 쓰기 위해 보노보에 대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일본 교토 영장류센터, 쿠마모토 보노보 보호구역, 베를린 동물원 등을 방문해 자료 조사를 했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기 이전의 세계와 원시림, 인간과 가장 가까운 보노보에 대한 공부를 했다.”

정 작가는 그러면서 “보노보는 우리 여성의 특징과 유사한 면이 있다”며 “연대를 중요시하고 감성적인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시종 아름답고 힘 있는 서사로 이어진다. 처음 차용한 판타지 기법이지만 작가는 과감하게 이야기꾼 특유의 뚝심으로 밀고 간다. 사육사 진이가 인간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단 3일. “나는 내게 돌아가야 했다. 다음 교차가 오기 전에, 내 몸이 엔진을 완전히 멈추기 전에, 지니에게 지니의 삶을 돌려줘야 했다.”(본문 중)

진이는 옛 남자 친구 민주에게 도움을 청하고, 3일밖에 남지 않는 시한은 이야기에 스피드를 가하는 촉매제다. 이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이자 화자인 민주는 몇 가지 의미를 깨닫게 된다. 생사를 오가는 진이를 통해서는 삶의 의미를, 보노보를 통해서는 생명의 의미를 성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생명만 소중한 게 아니라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인식에 도달한다.

한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추천사에서 “흔치 않은 소설이다. 동물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영혼이 큰 화면 가득 미적 충격을 던지며 널뛰듯 넘는다”며 “작가 정유정은 ‘종의 기원’에서 우리를 인간 내면 음습한 곳으로 끌고 다니더니 ‘진이, 지니’에서는 아예 종의 울타리 너머로 밀어넣는다”고 평한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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