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남 광주시교육청 정책기획관] ‘스쿨 미투’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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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남 광주시교육청 정책기획관] ‘스쿨 미투’의 뿌리
2018년 10월 09일(화) 00:00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이 ‘스쿨 미투’로 이어지고 있다. 신고가 접수된 학교에 예외 없이 경찰과 함께 특별조사단이 투입되고 있고 그 결과는 가혹하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격리되어야 하고,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는 교실 속 아이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혹시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학부모들은 걱정하고 있다.

교육청은 일벌백계를 얘기하지만, 폭력적인 전수조사 방식이 몰고 올 학교 공동체 파괴는 상상하기도 두렵다. 자꾸만 뒷걸음질 친다. 교육 공동체의 집단지성 발휘, 예방 시스템 구축과 더불어 학교의 자정 능력이 회복될 수 있게 교육과 신고 시스템을 강화하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미 내성화된 학교 문화의 혁신이 녹록하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스쿨 미투는 왜 발생하고 있고, 그 뿌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미래의 민주시민이 성장하는 학교에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자녀를 고등학교에 보낸 학부모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것이 인생인 것을. 행여 학교 측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불의를 목격하거나, 성비위를 접하고 불만과 고통을 토로하더라도, 그것이 죽을 정도의 일이 아니면, 미래를 위해서 잘 참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현명한 부모가 아니겠는가? 어설프게 아이들의 불만에 동조하여 고발 운운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일생일대의 시험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의 평정심을 흔들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전선동에 넘어가지 말고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태도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현실적인 처신인가? 그렇다. 대한민국 대부분 학교는 이렇게 대학입시 앞에서 인권을 저당 잡힌 채 오직 입시 체제를 향해서 학교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차별과 비인간화, 비교육적 상황에서도 참고 견디는 것이 우리 학교의 미덕인 것이다.

그 무관심의 뒤편에서 독버섯처럼 스쿨 미투가 자라나고 있다. 더욱이 일부 사립학교처럼 폐쇄적인 학교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포기하고 무관심했던, 그래서 오직 대학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대한민국의 학교 구조에서 스쿨 미투가 기생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인지도 모른다. 교사의 교권은 물론 아이들의 인권이 만성적인 불감증에 시달리고 있고, 학교의 자정 능력이 상실되고 있다.

부모들이 쉬쉬할 때 성 감수성이 민감한 학생들은 목소릴 터트렸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와 부당한 현실에 스스로의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겠다는 자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옳다. 비록 철이 없을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고통과 문제 의식은 소중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다. 높은 감수성과 시민 의식, 인간에 대한 이해, 돈으로 살 수 없는 휴머니티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어려운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이 투철한, 그래서 다가오는 사회 문제에 맞서서 공동체의 집단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스쿨 미투는 입시 교육 체제라는 무한경쟁의 괴물에 기생하고 있다. 그 체제 속에 있는 한 우리 모두는 피해자다. 우리 모두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이유이다. 광주교육청이 학교에 인권의 나무를 심고 키운 지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음이 상처받지 않고 건강해야 공부도 잘한다는 오직 한 가지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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