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선물 주머니’를 받았어요
![]() 김 미 은 문화부장 |
가끔은 지하철로 출퇴근하는데, 혹시 요즘 지하철에서 저를 본 사람이 있다면 좀 우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으며 혼자 실실 웃다가, 또 갑자기 눈이 벌게지며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고는 했으니까요. 어떤 이는 제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궁금했을 듯도 해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열심히 읽었던 건 오카노 유이치의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입니다.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와 60대 아들이에요. ‘페코로스’는 작은 양파 품종을 가리키는 말로 저자의 필명이자 별명입니다. 대머리인 그와 잘 어울리지요.
아들의 ‘대머리’는 치매 걸린 어머니의 즐거움이에요. 반들반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를 해주기도 하고 찰싹 때리고, 때론 꼬집기도 하는데 그 대목을 읽을 때마다 웃음이 터집니다.
그는 치매가 진행되는 어머니와의 일상을 그린 만화를 나가사키 상점가 정보지에 연재했고 이후 만화는 단행본, 다큐, 드라마, 영화로 제작돼 일본에서 화제가 됐답니다. ‘믿고 보는’ 일본어 번역가 양윤옥 씨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책을 번역했지만 일본 아마존에서 악평이 단 하나도 없었던 건 이 책뿐이라고 했더군요.
릴레이 책 공유 프로젝트
이 책을 읽게 된 건 ‘거시기 프로젝트’ 취재 덕이었어요. ‘거시기’는 (사)청년문화허브(www.culturehub.kr)가 진행하는 책 공유 프로젝트입니다.
취재 중 받은 ‘거시기 선물 주머니’는 가지고 있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무언가를 넣어 이웃과 나누기 위한 ‘공유형 선물 주머니’입니다. ‘봉투’에는 책과 거시기 안내장, 엽서 등이 들어있습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들면 다시 봉투에 담아 어딘가에 놓아두면 돼요. 전 만화책과 함께 ‘쏭’ 님과 ‘해남’ 님이 쓴 엽서를 받았어요.
“30대인 제가 우리 부모님의 젊은 날과 노년이 되어 버린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치매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고 유쾌하고 그려냈지만 중간중간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나이 들어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픈 기억들이 어떤 것이 될지 그려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해남’ 님의 말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았어요.
2013년 비슷한 이벤트가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로 집 앞 바구니나 벤치 등에 책을 놓아두고 ‘같이’ 읽는 프로젝트였죠. 두 달 만에 100호까지 만들어졌는데 당시 저희 집 인근에는 키스해링 작품이 그려진 ‘철가방’을 놓아 둔 벤치가 있었어요. 가끔 살펴보면 쓰레기가 들어 있거나 해서 아쉬웠는데 며칠 전 보니 아예 사라져 버렸더군요.
배우 엠마 왓슨을 아시는지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그리고 ‘미녀와 야수’의 벨 역을 맡았던 배우입니다. ‘책벌레’로도 유명한 왓슨은 지난 6월 지하철 등 파리 공공장소에 책 100권을 숨겨 두는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중고 서적 등을 공공장소에 두고 와 누구든 가져가 읽도록 하는 북 페어리즈(The Book Fairies·책 요정)와 진행한 기획이었답니다.
당시 ‘보물찾기’에 성공한 인증샷들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고는 했죠.
지하철·공원에서 보물찾기
취재를 마치고 10개의 주머니를 챙겼습니다. 지금은 우선 함께 나눌 책을 고르고 있는데 집 책꽂이를 훑어보며 만화책, 여행에세이, 인문서, 소설 등 다양한 책을 담을 작정입니다. 프로젝트 ‘연속성’을 위해 절반은 ‘철가방’ 벤치를 마련했던 이처럼 ‘아는 사람’과 ‘아는 장소’에 놓고 나머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어딘가에’ 두려해요. 무엇보다 큰 감동을 준 ‘페코로스’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엠마 왓슨은 아닙니다만, 우선 오늘 출근길 지하철역에 ‘거시기 봉투’를 두고 왔습니다. 심사숙고해 선택한 책 한 권과 짤막한 손편지도 함께요. 추천한 책이 영화로도 제작됐으니 책이 마음에 들면 영화로도 꼭 보시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책장에서 빠져나온 제 책들이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촌스럽기는 하지만 열권의 책에는 나만 아는 표시를 해 둘 생각입니다. 혹시 어느 날 이 책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하겠어요.
글을 쓰는 지금, 누군가 책을 가져갔을까? 그 책을 읽고 나처럼 재미를 느꼈을까? 이 사람도 거시기 봉투에 책을 담아 누군가에게 전할까? 궁금증이 입니다.
늘 치킨 광고나 우유 배달 주머니가 붙어 있던 당신의 집 앞에 어쩌면 누군가 보낸 ‘거시기 봉투’가 놓여 있을지 모릅니다. 자주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이나 카페·공원에서도 만날 수도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부담 없이 주머니를 열어 보세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프로젝트 거시기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면 상품도 증정한답니다.
‘거시기 프로젝트’와 떠나는 책 여행, 기대해도 좋을 듯합니다.
/mekim@kwangju.co.kr
그래서 말인데 제가 열심히 읽었던 건 오카노 유이치의 만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입니다.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와 60대 아들이에요. ‘페코로스’는 작은 양파 품종을 가리키는 말로 저자의 필명이자 별명입니다. 대머리인 그와 잘 어울리지요.
그는 치매가 진행되는 어머니와의 일상을 그린 만화를 나가사키 상점가 정보지에 연재했고 이후 만화는 단행본, 다큐, 드라마, 영화로 제작돼 일본에서 화제가 됐답니다. ‘믿고 보는’ 일본어 번역가 양윤옥 씨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책을 번역했지만 일본 아마존에서 악평이 단 하나도 없었던 건 이 책뿐이라고 했더군요.
이 책을 읽게 된 건 ‘거시기 프로젝트’ 취재 덕이었어요. ‘거시기’는 (사)청년문화허브(www.culturehub.kr)가 진행하는 책 공유 프로젝트입니다.
취재 중 받은 ‘거시기 선물 주머니’는 가지고 있기에도, 버리기에도 애매한 무언가를 넣어 이웃과 나누기 위한 ‘공유형 선물 주머니’입니다. ‘봉투’에는 책과 거시기 안내장, 엽서 등이 들어있습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들면 다시 봉투에 담아 어딘가에 놓아두면 돼요. 전 만화책과 함께 ‘쏭’ 님과 ‘해남’ 님이 쓴 엽서를 받았어요.
“30대인 제가 우리 부모님의 젊은 날과 노년이 되어 버린 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치매라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고 유쾌하고 그려냈지만 중간중간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어요. 내가 나이 들어 어떤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픈 기억들이 어떤 것이 될지 그려 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해남’ 님의 말이 그대로 가슴에 와닿았어요.
2013년 비슷한 이벤트가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책 읽는 벤치 IN 광주’로 집 앞 바구니나 벤치 등에 책을 놓아두고 ‘같이’ 읽는 프로젝트였죠. 두 달 만에 100호까지 만들어졌는데 당시 저희 집 인근에는 키스해링 작품이 그려진 ‘철가방’을 놓아 둔 벤치가 있었어요. 가끔 살펴보면 쓰레기가 들어 있거나 해서 아쉬웠는데 며칠 전 보니 아예 사라져 버렸더군요.
배우 엠마 왓슨을 아시는지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그리고 ‘미녀와 야수’의 벨 역을 맡았던 배우입니다. ‘책벌레’로도 유명한 왓슨은 지난 6월 지하철 등 파리 공공장소에 책 100권을 숨겨 두는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중고 서적 등을 공공장소에 두고 와 누구든 가져가 읽도록 하는 북 페어리즈(The Book Fairies·책 요정)와 진행한 기획이었답니다.
당시 ‘보물찾기’에 성공한 인증샷들이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고는 했죠.
지하철·공원에서 보물찾기
취재를 마치고 10개의 주머니를 챙겼습니다. 지금은 우선 함께 나눌 책을 고르고 있는데 집 책꽂이를 훑어보며 만화책, 여행에세이, 인문서, 소설 등 다양한 책을 담을 작정입니다. 프로젝트 ‘연속성’을 위해 절반은 ‘철가방’ 벤치를 마련했던 이처럼 ‘아는 사람’과 ‘아는 장소’에 놓고 나머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어딘가에’ 두려해요. 무엇보다 큰 감동을 준 ‘페코로스’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엠마 왓슨은 아닙니다만, 우선 오늘 출근길 지하철역에 ‘거시기 봉투’를 두고 왔습니다. 심사숙고해 선택한 책 한 권과 짤막한 손편지도 함께요. 추천한 책이 영화로도 제작됐으니 책이 마음에 들면 영화로도 꼭 보시라는 글도 남겼습니다.
책장에서 빠져나온 제 책들이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 촌스럽기는 하지만 열권의 책에는 나만 아는 표시를 해 둘 생각입니다. 혹시 어느 날 이 책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하겠어요.
글을 쓰는 지금, 누군가 책을 가져갔을까? 그 책을 읽고 나처럼 재미를 느꼈을까? 이 사람도 거시기 봉투에 책을 담아 누군가에게 전할까? 궁금증이 입니다.
늘 치킨 광고나 우유 배달 주머니가 붙어 있던 당신의 집 앞에 어쩌면 누군가 보낸 ‘거시기 봉투’가 놓여 있을지 모릅니다. 자주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이나 카페·공원에서도 만날 수도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부담 없이 주머니를 열어 보세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프로젝트 거시기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면 상품도 증정한답니다.
‘거시기 프로젝트’와 떠나는 책 여행, 기대해도 좋을 듯합니다.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