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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펭귄인형과 셰익스피어 맥주
2016년 12월 07일(수) 00:00
우리 집에는 ‘펭귄 한 마리’가 산다. 아니 펭귄인형이 산다고 하는 게 맞겠다. 녀석의 키는 15cm. 파란색 줄무늬의 머플러와 털실 모자를 쓴 모습이 앙증맞다. 작고 귀엽다고 해서 ‘페어리 펭귄’(Fairy Penguin)으로 불린다.

요정펭귄을 만난 곳은 호주 필립아일랜드(Phillip Island)의 기념품숍. 필립아일랜드의 명물인 페어리 펭귄 퍼레이드를 보고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워 ‘꿩 대신 닭’으로 펭귄인형을 구입했다. 필립 아일랜드는 호주 멜버른 시민들의 당일코스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멜버른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이면 닿는 데다 코알라, 희귀조류 등 다양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어서다.

뭐니뭐니해도 필립아일랜드 투어의 백미는 펭귄 퍼레이드. 펭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섬에는 현재 약 3만 7000여 마리의 페어리 펭귄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매일 평균 2천∼3천 마리의 펭귄이 해질 녘 사냥을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이 장관이다. 필립아일랜드 측은 이 진귀한 풍경을 투어 상품으로 개발해 전 세계에서 수백만 여명이 찾는 명소로 가꿨다. 관광객들은 매일 저녁 지정된 전망대에서 40분간 펭귄 행렬을 관람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끽한다. 손에 닿으면 잡힐 것 같은 펭귄들의 앙증맞은 몸짓에 넋을 놓는 관광객들이 한 둘이 아니다.

퍼레이드가 끝난 순간, 눈 앞에서 사라진 펭귄에 대한 허전함을 달래주는 건 다름 아닌 기념품숍(art shop)이다.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숍에는 펭귄을 소재로 제작한 수 백여 종의 상품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나 ‘고전적인’ 열쇠고리와 엽서, 스마트폰 케이스, 필기도구에서부터 인형, 스카프, 가방, 옷 등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광객들은 펭귄과의 짧은 추억을 떠올리며 경쟁하듯 지갑을 연다.

어디 필립아일랜드뿐인가. 외국의 유명 미술관이나 관광지를 방문하다 보면 매번 출구 쪽에서 마주하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기념품 숍이다. 기자의 경우, 어떤 날엔 오히려 전시장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기발한 아트상품에 감탄했었다. 셰익스피어 생가의 맥주를 보면서, 존 F 케네디 기념관의 액세서리를 보면서도 그랬다. 하물며 아름다운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의 아트숍은 말해서 무엇하랴.

필립아일랜드를 나서는 길, 문득 지역 문화예술기관의 썰렁한 아트숍이 스쳐 지나갔다. 엊그제 개관 1주년을 맞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창설 2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 내년 개관 25주년을 앞둔 시립미술관에선 명성과 역사가 무색하게 색깔 있는 아트상품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래 독창성과 예술성이 돋보이는 아트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 ‘잘 만든 아트상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닌 관광지나 도시의 이미지를 알리는 브랜드로 진화중이다. 펭귄인형을 볼 때마다 필립아일랜드와 멜버른이 떠오르는 듯이. 언제쯤이면 문화광주를 상징하는 멋진 아트상품을 거실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