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재의 세상만사] 대구의 김부겸·광주의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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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대구의 김부겸·광주의 이정현
2014년 06월 13일(금) 00:00
지방선거에서 그는 졌지만 이겼다. 비록 당장의 승리는 놓쳤지만 많은 박수를 받았다. 낙선하고도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 대구의 김부겸이다. 시민 10명 중 4명이 그를 찍었다. 40.3%. 여당 텃밭에서 야당 간판을 걸고 얻은 득표율. 놀라운 수치다.

영남 지역에서 기호 2번. 그것은 호남에서의 기호 1번과 같다. 애초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죽으러 가다니. 누가 봐도 바보나 하는 짓 아닌가. 바보의 길. 노무현이 걸었던 길. 그 길을 김부겸이 묵묵히 걷고 있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2년 전 2012년 총선 때. 당시 3선까지 안겨 준 경기 군포 지역구에 미련도 있었으련만. 대구 수성갑에 내려가 이한구 의원과 맞붙었다. 낙선했다. 그때도 40% 넘게 지지를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했더라면 어땠을까.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라고 해서 대구의 그런 정서를 몰랐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는 쉬운 길을 버리고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죽∼ 가겠다고 한다.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이번 도전이 결코 마지막이 아니라는 거다. ‘인생 삼세판’ 아니냐고 그는 말한다. 그동안 대구에서 두 번 실패했지만 또 대구에서 도전할 거란다. 2년 후 총선 때 보자는 거다. 대구 시민들도 매우 호의적이다. 벌써부터 그를 대통령감으로 키워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구에 김부겸이 있다면 광주엔 누가 있나. 이정현이다. 그는 뼛속까지 새누리당 사람이다. 광주는 새누리당의 불모지. 아니 여당의 무덤이다. 그런 곳에서 그는 온갖 고난과 설움을 겪으며 평생 한길을 걸어 왔다.



‘바보의 길’ 걸었던 사람들



개인적으로는 이정현을 한두 번 만나 본 적이 있다. 잠깐이었지만 말을 참 잘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던가. 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하면 듣는 이에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에게서는 그러나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호남 사랑’의 열정과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사연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04년 총선에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나섰을 때다. 대통령(당시엔 한나라당 대표)이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전화를 받은 그는 처음엔 “누가 대표를 사칭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고 한다.

“직접 가 봐야 하는데 너무 오라는 곳이 많아 못 가서 미안합니다. 선거 끝나고 나서 밥이라도 한 끼 같이 합시다.” 밥 한 끼 하자는 약속은 얼마 가지 않아 지켜졌다. 총선 직후 마련된 자리에서 이정현은 10분 넘게 열변을 토했다.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 달라”고.

당시만 해도 그는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일개 당원에 불과했다. 그런 그의 말을 대통령은 꼼꼼히 메모까지 해가며 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 “어쩜, 말씀을 그렇게 잘 하세요.” 며칠 후 그는 당 수석 부대변인에 임명된다. 순수 당직자 출신인 그가 나중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것도 그런 인연 덕분이었다.

이정현의 시작은 미미했다. 지난 1995년. 광산 제2선거구에 민자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두 번째 도전은 ’광주 국회의원’이었다. 지난 2004년 14대 총선 때. ‘광주 서구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720표(1.03%)를 얻는 데 그쳤다. 1%대의 처참한 결과였다.

그의 도전은 19대 총선에서도 계속된다. 2012년. 다시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김부겸이 경기 군포를 포기하고 대구로 갔던 바로 그때였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공천’과 당선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광주를 택했다. 그리고 39.7%의 표를 얻었다.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얻은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이정현과 김부겸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나이가 같다. 1958년생. 만 56세다. 걸어온 길도 비슷하다. 바보의 길. 우직하리만큼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 여당 텃밭에 언젠가는 야당의 깃발을 꽂아 보겠다는 김부겸. 야당 텃밭에 여당의 깃발을 꽂고야 말겠다는 이정현.



‘삼세판’ 고향에서 도전하길



두 사람은 2011년 나란히 책을 펴낸 바 있다. ‘나는 민주당이다’. 이는 김부겸의 자서전 제목. 민주당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작심을 제목에 담은 것이다. ‘호박국 대변인-진심이면 통합니다’. 이것은 이정현의 자전에세이집 제목. ’호박국’은 호남·박근혜·국민을 뜻한다. 지역주의의 질긴 악연을 끊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는 책 제목들이다.

최근 청와대 홍보수석에서 물러난 이정현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부장관 등 입각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문제가 많은 문창극 총리 지명을 철회하는 대신 그를 국무총리로 지명해도 좋을 듯한데.) 일부에서는 7·30 재보선 출마를 점치기도 한다. 그가 출마를 한다면 어디로 나갈까. 거물급들의 출전이 예상되는 ‘서울 동작을’ 지역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를 서울 동작에 뺏길 수는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번에 그가 다시 호남 지역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선 이용섭 의원의 사퇴로 ‘광주 광산을’ 지역구가 비어 있다. 광산은 과거 그가 시의원 도전으로 인연을 맺은 바 있는 지역이다.

어제 대법원에서는 김선동 의원의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순천·곡성’ 지역구도 주인을 찾고 있다. 곡성은 이정현의 고향이기도 하다. 광주나 곡성 어디든 좋다. 그가 이번에 고향에서 출마한다면 세 번째 지역구 국회의원 도전이 된다. 그야말로 ‘삼세판’이다.

이정현은 여권에서 드물게 보는 호남의 인재다. 그는 그동안 스스로 커 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키워 줘도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언젠가 여권의 이정현과 야권의 김부겸. 그들이 더 큰 선거에서 맞붙게 될 날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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