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메뉴판, 세계를 보여주다
  전체메뉴
한 장의 메뉴판, 세계를 보여주다
미식가의 메뉴판-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2026년 01월 23일(금) 00:20
프레더릭 앤드 넬슨 백화점의 어린이 메뉴. 1955년경.




칼튼 레스토랑의 대관식 기념 연회 메뉴판. 1902년.










화려한 영국 왕의 대관식 기념 오찬 메뉴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식탁에 차려진 호화로운 음식을 떠올리게 한다. 요리사복을 입은 돼지들과 유쾌한 삐에로의 모습이 담긴 어린이용 메뉴판은 아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터다. 메뉴판에 적힌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음식을 맛보는 일은 조금 난해하긴 해도 얼마나 흥미로운 경험일까.

책에 등장하는 온갖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상상의 나래를 펴게된다. 식탁에 함께 둘러앉아 메뉴판을 통해 세계여행을 떠나고 역사 속 사실과 조우한다.

캐나다 몬트리올 맥길대 교수로 음식과 문학, 식문화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나탈리 쿡이 쓴 ‘미식가의 메뉴판’은 음식 너머에 담긴 사회와 문화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풍부한 메뉴판 사진이다. 시대와 국가를 아우르는 다양한 사진은 독자를 당시의 식탁 앞으로 데려간다.

메뉴판의 기본 역할은 음식 선택을 돕는 것이지만 많은 메뉴판은 인쇄술과 예술, 그래픽 디자인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자료 역할을 하고 당시의 문화를 소개하는 소중한 사료가 된다.

1장 ‘눈이 즐거운 만찬’에서 만나는 메뉴판들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과감한 인물 묘사와 섬세한 스케치 선으로 풍부한 장면을 연출한 툴루즈 로트렉의 메뉴판과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삽화가로 유명한 윌 오언이 제작한 메뉴판 등은 매혹적이다. 호화 여객선에 오른 이들의 식탁 위에는 여행할 나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메뉴판이 놓인다.

메뉴판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기념품’이 되기도 한다. 팬아메리카 항공 등에서는 인기 있는 메뉴판을 집으로 우송해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고 메뉴판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등장했고,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 등에는 그들이 기증한 수만 점의 메뉴판이 보존돼 있다.

1920년대 여행산업의 발달은 어린이 전용 메뉴판을 탄생시켰다. 지금은 어린이 메뉴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오랜 기간 아동들의 취향은 고려되지 않았다. 교통의 발달로 장거리 여행이 늘고 호텔과 패밀리레스토랑이 확산되면서 어린이가 새로운 소비 타깃으로 떠올랐고 업체들은 그들을 위한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다.

색깔이 화려한 삽화나 동화 속 캐릭터를 싣고 미로 찾기 등 놀이도구까지 겸한 메뉴판이 인기를 끌었고 조르주 들루의 기발한 삽화는 아이들의 미각 뿐 아니라 시각적 감각까지 길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뉴판은 때론 자국의 가치를 강조하고 선입견에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1930년대 뉴욕 세계박람회의 소련 파빌리온에 등장한 메뉴판에 “저희 직원들은 충분한 보수를 받고 있습니다. 소비에트 관습에 따라 팁 주기를 삼가주십시오”라는 글귀가 함께 실린 게 대표적 사례다.

책은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건강한 음식의 기준, 미식과 건강의 관계를 살펴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밖에 어떤 항목을 어떤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손님의 선택과 매출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메뉴판을 구성하는 메뉴 공학자의 존재도 흥미롭다.

버나드 프리드가 뉴욕공립도서관에 기증한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수많은 메뉴판은 뉴욕의 피자집 등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식당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당신이 어느 날 들렀던 식당의 메뉴판도 시간이 흘러 ‘시대’를 증언하는 귀한 자료로 자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교보문고·2만2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