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섬’ 10년…이제는 ‘살고 싶은 섬’으로
  전체메뉴
‘가고 싶은 섬’ 10년…이제는 ‘살고 싶은 섬’으로
섬이 위험하다 <3> 관심 멀어지는 섬들
반월·박지도의 과거
‘도라지섬’ 보라색 테마 ‘퍼플교’ 만들고 아스타 국화 심어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한국관광의 별’ 선정 등 ‘대박난 섬’
반월·박지도의 현재
“꽃 관리 안 돼” “볼거리 없다”…기후변화에 아스타 축제도 망쳐
반짝 홍보·관광 인프라 조성 대신 지속가능한 섬 개발 고민해야
2025년 11월 12일(수) 19:10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퍼플교는 ‘가고싶은 섬’ 사업을 통해 ‘사계절 보라색 꽃이 피는 섬’이라는 테마에 따라 정비돼 관광객들에게 선보였다.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꽃이 피면 우리 섬이 얼마나 멋있는데요. 버들마편초가 봄부터 가을까지 길가부터 섬 곳곳을 물들이면 굉장합니다.

‘가고싶은 섬’이 맞죠. 여기가 또 다도해 아닙니까. 올망졸망 섬이 다 보여요. 그런데 (꽃) 가꾸는 게 잘 안되는겁니다. (관리가) 안돼서 다 죽어버리니, 오는 관광객마다 실망하고 한마디씩 하죠. 몇 십만 그루 심어놓고 관리를 안하니.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하지 않냐는 말이 안 나오겠습니까.”

반월·박지도의 대표적 포토스팟인 어린왕자 조형물.
지난 11일 신안 반월·박지도에서 만난 김용국 반월마을 조합장은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10년 전 처음으로 ‘가고싶은 섬’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을 때의 절실함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은 커녕 가꿀 사람도 찾기 힘든 게 요즘 섬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사업 초기 섬에 쏠렸던 지자체의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게 느껴져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섬 곳곳을 물들이는 버들마편초, 바닷바람에 하늘거리는 아스타꽃과 바다와 갯벌,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닿을 듯 가까운 섬들이 어우러지는 이국적 풍경에 탄성을 지르는 방문객들.

퍼플섬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르며 몰려온 여행객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뿌듯해하던 섬 주민들의 이런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꽃이 없네”, “기껏 멀리서 왔는데 볼 게 없네, 괜히 왔네.” 섬을 찾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실망스러움이 점차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반월·박지도는 먼 거리를 달리고 돌아와야 하는 섬이다. 광주에서 출발해도 다리 세 개(김대중대교·압해대교, 천사대교, 중앙대교)를 넘어야 반월·박지도 섬 입구에 닿는 먼 거리다. 꼬박 2시간을 승용차로 달려야 오는 섬, 다리가 없을 땐 큰 맘 먹지 않으면 오기 쉽지 않은 섬이다. 그런 섬을 왔는데, 기대감을 잔뜩 안고 왔는데, 볼 게 없으니, 꽃이 없으니 실망감도 클 수 밖에 없다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기후변화도 한몫을 했다. 가을이면 섬을 물들인 아스타(국화) 꽃 축제는 지난 2019년 처음 꽃을 심은 이후 2022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열지 못했다. 꽃이 늦여름 피기 시작해 10월 중후반까지 피어야 하는데, 매년 반복되는 무더위와 열대야, 폭우로 꽃이 잘 자라지 못해 개화율 10%를 넘기지 못했다.

‘12사도 예배당’이 조성된 신안 기점·소악도는 순례자의 섬으로 불린다. 사진은 베드로의 집.
올해도 박지도 아스타 정원 내 3만2500㎡ 부지에 심은 아스타 24만 그루는 군 계획대로 개화하지 못했다. 9월 중순으로 계획했다가 10월 중순으로 한 차례 더 미뤘던 아스타 꽃 축제는 결국 취소됐다. 가뜩이나 바다가 뜨거워지면서 평소 잡히던 물고기가 사라져 바다만 보고 살 수도 없어 기껏 섬에 자생하는 보라색 도라지 군락지와 꿀풀 등의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사계절 보라색 꽃이 피는 섬’을 테마로 꾸며 섬 개발에 나섰다가 벌어진 일이다.

섬 주민들이 속상할 수 밖에 없다. 반짝 홍보와 관광 인프라 시설 몇 개 조성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섬 가꾸기 사업에 머무는게 아니라, 지속가능한 섬 개발·보전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남도가 지난 2015년부터 올해까지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한 섬은 모두 24개.

이들 섬 중 여수 낭도, 고흥 연홍도, 강진 가우도, 완도 소안도, 진도 관매도, 신안 반월·박지도(2015년), 보성 장도, 완도 생일도(2016년), 신안 기점·소악도(2017년), 완도 여서도, 진도 대마도(2018년) 등 10개 섬에 우선적으로 관광 인프라 시설을 갖추고 고유의 문화자원과 연계해 관광객들에게 선보였다.

반월·박지도에는 주민들의 “도라지 많이 심어놓은 것 밖에 없다”는 말에 착안, 보라색 테마로 한 ‘퍼플교’(547m), ‘문브릿지’(380m)를 만들고 버들마편초, 아스타 국화 등을 심었다.

섬은 대박이 났다. 지난 2021년 제1회 세계관광기구(UNWTO)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의 별 등에 선정됐다. 고작 1.75㎢(박지도)·2.54㎢(반월도)에 불과한 섬에 2020년 한 해에만 20만 3094명이 찾았다. 2년 만인 2022년에는 38만 5828명이 다녀가는 등 전남 대표 관광지에 이름을 올렸다.

떠나는 곳으로만 여겼던 섬이 찾아오는 섬으로 바뀌었다. 편의점 하나 없던 섬에 식당, 게스트하우스가 잇따라 들어섰고 109명(2015년)이던 반월도 인구는 130명(2024년)으로 늘었다.

낯선 곳에 대한 설레임과 섬 특유의 차별화가 부각되면서 다른 섬들을 찾는 관광객 발길도 잦아졌다. 5년 전(2020년) 4만7000명이던 낭도 방문객은 2년 만인 2022년에는 무려 49만 2862명이 몰렸다. 강진 가우도도 2020년 30만 7199명이 찾을 정도로 ‘핫’한 섬으로 떠올랐고 순례자의 섬으로 입소문이 난 기점·소악도는 지난해에만 5만 7866명의 발길이 이어졌다. 반월도에서 퍼플샵을 운영하는 카페지기 배영석씨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가고싶은 섬’ 사업으로 살기 좋아진 건 확실하다”고 했다. 커피숍, 식당이 생기고 인근에 주유소가 들어설 정도로 오가는 차량이 많아졌으니 지역 경제도 자연스럽게 활기를 띠었다. 최근 3년(2020년 8월~2023년 12월) 간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90억원에 달했다는 게 신안군 분석이다. 퍼플섬 입장료 수입으로만 25억원을 올렸고 일자리도 50개나 만들어졌다.

지속가능한 섬, 가고싶은 섬, 머물고 싶은 섬으로 유지해나가는 건 여전한 과제다.

한 해 50만명에 육박했던 여수 낭도 방문객 수는 지난해 18만 9550명으로 반토막이 났고 30만명이 꾸준히 찾았던 강진 가우도도 지난해 15만 4838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게스트하우스, 탐방로정비·마을카페, 마을식당 등의 시설 인프라 개선만으로는 관광객을 꾸준히 불러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전남도가 추진하는 ‘가고싶은 섬’ 사업의 경우 섬 주민들의 기대 만큼 지자체 관심과 참여 의지가 미흡하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콘텐츠를 갖춰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퍼플섬 카페지기 배영석씨는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면서 “꽃을 더 많이 심는 등 관광객들을 불러모을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섬으로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 반월·박지도 글·사진=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이 기사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관한 지역신문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된 기사입니다. 이 사업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실시됩니다.

핫이슈

  • Copyright 2009.
  • 제호 : 광주일보
  • 등록번호 : 광주 가-00001 | 등록일자 : 1989년 11월 29일 | 발행·편집·인쇄인 : 김여송
  • 주소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 3가 9-2)
  • TEL : 062)222-8111 (代) | 청소년보호책임자 : 채희종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주일보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