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전라도 방언으로 성경 번역 ‘화제’
시인인 임의진 목사 ‘마가복음 전남방언’ 펴내…방언사전도 수록
“제주항공 참사로 하늘나라로 떠난 두 누이의 사투리 깊이 생각나”
‘책이 맹글어진 야그 마당자리’ 오는 30일 카페꼼마 파랑새안과점
“제주항공 참사로 하늘나라로 떠난 두 누이의 사투리 깊이 생각나”
‘책이 맹글어진 야그 마당자리’ 오는 30일 카페꼼마 파랑새안과점
![]() 임의진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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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가복음 1장 17절)
전남은 남도 방언의 보고다.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은 오랜 세월 이어온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투영돼 있다. 사투리를 들으면 정감이 가고 왠지 친숙해지는 느낌이다.
시인인 임의진 목사는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강진과 해남 등지를 떠돌며 자랐다. 부모님이 목회를 하다보니 교인들 품에서 자랐는데 보통 할머니 권사님들과 지냈다. 그 일찍부터 ‘사투리 영재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CNN 동시통역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사투리를 모두 소화해냈다.
임 목사는 과거 강진에서 남녘교회라는 교회 목회를 했고 이후 2005년부터 담양 수북면 산골짜기에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그동안 전라도 면민으로 살면서 시골분들의 어투를 오래 익혔는데 전라도말을 수집해오면서 개인 노트를 만들고 그랬어요. 사라져가는 말들이 아깝고 아쉬웠죠.”
그가 이번 ‘마가복음 전남방언’을 펴내게 된 이유다. 이번 성경에는 해안가에서 쓰는 사투리, 저자가 태어난 바닷가마을 방언을 주로 담았다.
그는 “서울에서 신학을 배울 때 들은 이야기인데 표준말을 써야 교인들이 좋아한다”면서 “목사들은 어디로 부임할지 모르는 신세이니 지역 방언에서 벗어나 표준어를 쓰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전라도로 다시 내려와 바닥 사람들과 어우렁어우렁 지냈다”며 “나누는 말만으로도 즐거운 세월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번 책을 내게 된 데는 또 다른 숨겨진 이유도 있다. 지난해 12월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에서 그는 두 누이를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하필 이런 일이 내게 생겼을까, 한동안 망연자실했었다”는 말에서 먹먹함이 느껴졌다.
“당시 유가족들이 목사인 저를 의지하고 그랬다”며 이후 기억 시민모임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다. 한편으로 “누이들과 전화로 또는 가끔 만나면 사투리를 쓰며 어머니에게서 배운 말, 어린시절 교회에서 같이 자라며 배운 사투리를 쓰곤 했는데 그 생각이 깊이 났다”며 “마가복음을 우리 지방말로 옮기게 된 것은 마치 가족들과 얘기하는 그런 느낌 때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경 66권 가운데 왜 마가복음이라는 책을 방언으로 옮기게 됐을까. 임 목사에 따르면 마가복음은 신약 가운데 가장 처음에 쓰여졌으며 내용도 기묘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많은 기적 부분은 빠졌고, 병 고침도 사회로 복귀시키는, 그러니까 다시 신원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 우리 인생이 살고 있는 모든 순간이 기적과 같고, 죽음조차도 놀라운 변화의 장면입니다. 마태복음의 장황함과 달리 마가복음은 매우 전개가 빠르지요. 또 예수님은 아람어 곧 사투리를 사용했는데, 마가복음엔 기어코 그 사투리를 남겨놓았죠 ‘달리타 쿰’과 같은 말이 그러한 예죠. 유대 나라의 지방 방언 사용자였던 예수님의 말을 예루살렘 서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오해가 더 커지는 법이죠.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가진 자들이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권력을 쥔 정치인들이 가난한 바닥 사람들 민심을 못 읽고 날이면 날마다 고급술을 마시면서 흥청망청하다가, 술김 홧김에 계엄도 해서 나라가 망할 뻔 보기도 했던 것이 얼마 전 일이죠.”
전남 방언에는 특유의 리듬감이 있어 마치 노래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판소리가 그 대표적 구현이다. 그는 “이번 책은 마치 판소리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노랫가락을 나눔 같은 말투요 말씨다”라며 “장식적인 말보다 고스란히 삶이 투영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독 전남 방언의 소멸 속도가 다른 지방보다 빠르다고 생각한다”며 “인구 소멸도 가장 많고, 거기다 정권부침 권력부침도 심해서 기운 운동장에 사회 하층 부류 사용언어처럼 자긍심을 잃게 만들었다”고 부연했다.
이번 책을 펴내면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각 장마다 읽기 쉽게 각주를 달았던 점이다. 또한 뒷면에는 방언사전을 따로 실었다. “언어학적으로도 성서번역사로도 전남방언 번역은 한국 최초”라는 말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는 오래 전 강진을 떠난 뒤로는 목회자보다는 예술가의 삶을 지향했다. 광주에서 메이홀을 열고 이매진 순례자학교를 세우면서 교회보다는 시민사회 대안운동에 매진했다. 또한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문득문득 “가난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모시고 갈릴리에서 목회를 하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자는 뜻에서 복음서를 전라도말로 번역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며 이번 작업은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의무’였다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 교회 변혁의 작은 불쏘시개’라도 될까 싶어 공교회로 다시 복귀했다. 교회협(NCCK) 가맹교단이자 우리나라 유일한 자생 민족교단인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총무로 매주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바쁜 생활이지만 남도의 산골짝에서 잠을 잘 때 가장 편하다”는 말에서 그의 내면에 드리워진 ‘전라도 정서’가 주는 치유의 한 단면이 읽혀졌다.
한편 ‘책이 맹글어진 야그 마당자리’(출판기념회)가 오는 30일(오후 7시) 광주시 동구 카페꼼마 파랑새안과점에서 열린다. 또한 서울 인사동 인덱스에서는 오는 11월 25일~12월 2일 ‘임의진·전정호·홍성담 3인 판화전-가난한 사램들의 말씀 끄니’가 열린다. 개막식은 오는 11월 26일 오전 6시.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