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된장찌개 인기 하락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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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된장찌개 인기 하락 시대
2025년 08월 28일(목) 00:00
예전에는 밥상에 된장찌개가 없으면 허전했다.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물, 두부와 애호박, 감자 몇 알이 담긴 그 단출한 찌개 한 그릇이면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그런데 요즘은 사 먹는 된장찌개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식당에서도 곁가지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고, 젊은 세대는 아예 메뉴에서 외면하기도 한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걸까. 고깃집에서 거저 주거나 군대의 그 유명한 된장국 내지는 찌개로 남아 있다. 청국장을 사먹기 힘든 것은 물론이다. 냄새 난다는 이유다. ‘냄새 없는’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판다. 김치찌개와 불고기, 제육볶음도 값이 비슷하니, 별다를 게 없는 된장찌개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아쉽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첫째, 입맛의 변화다. 된장찌개의 구수하고 담백한 맛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운 양념과 자극적인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에 길든 세대에게 된장찌개는 밋밋하게 느껴진다. 김치찌개는 여전히 화끈한 매운맛으로, 부대찌개는 푸짐한 재료와 진한 국물로 사람들을 잡아두지만, 된장찌개는 ‘옛날 음식’처럼 뒤로 밀려난 것이다. 70, 80년대 신문기사에는 부대찌개라는 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엄청난 약진이다.

둘째, 외식 문화의 변화다. 식당 메뉴판을 보면 된장찌개는 대부분 서비스나 추가 메뉴로 존재한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은 뒤 국물로 곁들이는 정도일 뿐, 단독으로 주문해서 즐기는 손님은 드물다. 차돌박이나 해물을 넣어 풍성하게 만든 된장찌개는 그나마 관심을 끌지만, 전통적인 된장찌개의 소박한 맛은 외식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해물이 비싸서 가격이 안 맞는다는 것도 이유다.

셋째, 가정식 문화의 쇠퇴다. 과거에는 집집마다 장독대가 있었고, 된장은 그 집만의 맛을 품었다. 된장찌개는 곧 가족의 밥상이자 집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공장에서 찍어낸 된장을 쓰는 집이 대부분이다. 균일하지만 개성이 없는 맛은 특별함을 잃었고, 젊은 세대에게 된장찌개는 “집에서 늘 먹는 흔한 음식”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배달 음식과 간편식에 익숙한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뒤로 밀린 셈이다. 유튜브를 보라. 된장찌개를 다룬 것은 거의 다 “집에서 만드는 고깃집 된장찌개”다. 공장 된장과 조미료의 배합으로 승부를 보는 아주 상업적인 찌개만 관심사항이다.

넷째, 비주얼 경쟁에서의 약세다. 오늘날 음식은 맛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 사진을 찍어 올릴 때 시선을 끄는 화려함이 있어야 한다. 빨갛게 끓어오르는 김치찌개, 치즈가 흘러내리는 퓨전 찌개에 비하면, 갈색 국물 속 두부와 호박이 담긴 된장찌개는 ‘투박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구수한 맛은 입에 닿아야 알 수 있는데, 눈으로는 매력이 약하다 보니 자연스레 외면받는다. 쓸쓸하다.

그럼에도 된장찌개는 여전히 가치 있는 음식이다. 발효 식품으로서 장 건강에 좋고, 깊은 풍미는 시간이 만들어낸 전통의 산물이다. 일본이 미소시루를 세련된 ‘국물 문화’로 지켜내듯, 우리도 된장찌개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간편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전통 발효 수프로 세계에 알리는 방식도 가능하다.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된장을 떠오면, 이미 공기에는 발효된 된장의 진한 향이 퍼져 있었다. 그 냄새는 낯선 이에게는 강하고 거북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삶의 냄새였다. 뚝배기에 두부를 크게 썰어 넣고 호박이며 감자, 양파를 담아내면 비로소 된장찌개가 제 얼굴을 갖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꼭 “된장은 너무 오래 끓이면 맛이 쓰다”며 불조절을 세심하게 했다. 그 덕분일까, 우리 집 된장찌개는 늘 구수하면서도 텁텁하지 않았다.

된장찌개는 계절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여름에는 풋고추를 듬뿍 넣어 칼칼하게 끓인다. 더위에 지친 몸을 톡 쏘는 매운맛으로 깨워주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버섯을 넣어 향긋하게 끓이고, 겨울이면 김장김치 한 조각을 썰어 넣어 시원함을 더한다. 봄에는 달래나 냉이를 넣어 흙내음 가득한 향기를 풍기기도 한다.

된장찌개는 그 계절에 나는 것을 담아내며, 늘 지금 이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였다. 이런 색깔을 입혀야 된장찌개가 살아남는다. 발효 음식 특유의 ‘한입만 먹어도 바로 감탄이 나오는’ 기술을 얹어야 한다. 아쉽다. <음식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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