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지역 출판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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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예향] 지역 출판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
지역콘텐츠 발굴과 기록, 출판 지원으로 토대 만들어야
2025년 08월 06일(수) 17:00
광주 동구청에 설치된 ‘책 읽는 동구’ 공간. <광주시 동구>
지난해 11월 초, 강기정 광주시장과 함께하는 ‘월요대화’에 참석했다. 주제는 ‘책과 문화는 광주의 힘, 세계로 나간 한강과 소년들’이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생각의 힘을 가진 도시 광주를 구현하고 5·18과 오월정신을 세계에 알리는 방안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취지였다.

수상 축하 행사와 기념사업을 계획하는 광주시에 한강은 자신의 이름을 건 그 어떤 사업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대신 이런 뜻을 전했다. “큰 기념관, 화려한 축하 잔치보다 책 많이 읽고, 많이 사는 광주를 구현해 달라.”

‘책 많이 읽고, 많이 사는 광주’라는 말속에는 서로 연관된 주체가 숨어 있다. 책을 쓰는 저자, 책을 만드는 출판사, 책을 파는 서점, 책을 사는 독자, 책을 공유하는 도서관이 그것이다. 한강의 바람은 이 주체들을 통해 ‘책 생태계’가 활발한 광주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독서는 새로운 경험과 창의력의 토대

광주가 K출판의 메카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지역 출판의 세계화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수도권 인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설 만큼 정치, 경제, 문화의 쏠림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역 출판의 부흥을 꿈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출판사와 출판물, 서점 등의 규모는 물론 독서율에서도 광주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한강은 자신의 글쓰기를 “언어라는 실을 따라 다른 이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경험, 다른 내면과의 만남. 저의 가장 중요한 가장 절박한 질문들을 그 실에 맡겨, 다른 이들에게 보내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수상 연설에서는 소설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후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다.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다. 독서는 책 속에서 타자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자 새로운 의미의 생성 과정이며 창의력의 토대다. ‘생각의 힘을 가진 도시 광주’를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인 것이다.



지역 출판을 주제로 한 토론회. <송광룡 제공>
◇지역 출판의 세계화, 책 생태계 활성화로부터

광주가 K출판의 메카가 되려면 ‘작가-출판사-독자(서점·도서관)’로 순환하는 책 생태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서점과 도서관을 고리로 보다 많은 독자가 책과 친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을 독자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서 모임’이라는 연구 결과(‘비독자 대상 독서 유인사업 설계 및 연구’, 이순영, 2024. 12.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가 있다. 독서 모임 다음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도서 구입비를 지원하고 독서 시간을 제공하는 것, 그다음으로는 독서 홍보가 뒤를 이었다.

무엇보다도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도서관이나 서점 혹은 기관에서 독서 모임을 열고 일기와 자서전을 쓰는 프로그램을 주최하거나 지원하는 일, 출판사가 매개가 된 저자와의 대화나 창작 아카데미 등이 모두 이런 커뮤니티 형성의 일환이니 더욱 권장하고 참여할 만하다.

최근 광주시가 ‘인문도시 광주위원회’를 꾸리고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나 광주시 동구가 ‘인문도시 동구’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흘린 땀방울은 이런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지역출판육성→지역독서공동체→지역문화관광’ 등의 큰 그림을 그리자면 갈 길이 너무 멀다. 일례로 2021년 민관이 뜻을 모아 제정한 광주의 ‘지역출판진흥조례’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부산과 대구 등지에 ‘출판인 연대모임’이 결성된 것과 달리 광주는 아직 사전 모임도 갖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출범한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가 부산시와 시의회 등 관계 기관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지역 콘텐츠 출판 지원, 공동 시리즈물 기획, 독서문화 확산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반이 있었기에 국내의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국제적인 유수의 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한 것을 직시하고 지난해 12월 부산국제아동도서전을 개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지역의 콘텐츠는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모르거나 무시하는 소리다. K문화가 세계에서 개성으로 빛을 내듯 지역문화는 그 K문화를 형성하는 개성의 보고다. 5·18이 일어났을 때 한강은 아홉 살이었다. 열두 살 때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다”고 했다. 그는 “그 훼손된 얼굴들” 앞에서 생각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리고 헌혈하기 위해 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선 사람들 앞에서 생각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후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한강이 먼저 한 일은 “900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하는 것이었다.

한강이 읽었던 그 증언록과 사료들은 국가가 5·18을 인정하지 않았던 시절 뜻있는 이들의 사투의 기록이었다. 5·18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된 이후에는 기관의 지원에 의지해 발간되었다. 어쨌거나 국가가 눈 감을 때 부족하나마 ‘광주’는 5월의 진실을 기록으로 남겼고, 5월을 경험하지 못한 한강은 그 기록을 통해 위대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할 수 있었다.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에 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한가 방증하는 사례다.



광주지역은 출판사와 출판물, 서점, 독서율에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전일빌딩245 북카페. <최현배 기자>
◇국가와 지자체에 출판 전담 부서 절실

새로움을 발견하는 ‘생각의 힘’은 익히 구호화 된 이념에서 나오지 않는다. 골목책방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낯익은 것이 아닌 낯선, 새로운 모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출판은 고객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좌판을 벌이고 보는 백화점식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내가 자주 가는 골목책방이 ‘봄의 책방’이라면 또 다른 골목책방은 ‘여름의 책방’, ‘가을의 책방’일 수 있다.

광주시를 비롯한 지자체는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관련 기관에 지역 출판을 전담하는 부서가 절실하다. 사업의 지속성·확장성 때문이다. 상업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강의 작품은 탄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윤리의식이 낳은 기록의 산물이다. 그동안 지자체별로 진행하고 있는 출판 사업을 하나로 통합하여 지역의 작가와 출판사가 연합하여 10년 대계, 100년 대계 지역 콘텐츠를 기록하고 가꾸어가면 어떻겠는가.

이러한 기반에서라야 자칫 보여주기식으로 그치고 마는 그 많은 ‘독서대전’이니 ‘문학축전’이니 하는 이벤트들이 실속있게 정착될 수 있지 않겠는가.

K출판의 메카, 아니 지역 출판의 세계화를 위한 제안은 차고도 넘친다. 파주의 출판단지, 전주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대구의 Book vally처럼 광주에도 그럴싸한 단지의 조성을 요청할 수 있다. 지역 출판의 고질병인 유통의 한계를 해결해줄 ‘광주·전남 스마트 출판물류센터’의 설립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시키는 한강의 시적 산문”을 선정 이유로 들었다. 광주 사람이라면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제주 사람이라면 ‘작별하지 않는다’를 떠올렸을 것이다. 세계인이 한강의 작품에 열광하고 있다면 이즈음 우리가 골방에 쌓아둔 ‘5·18 증언록’을 정선하고 번역하여 수출하는 일도 추진해 볼 만하다. 이것이 지난해 11월, 광주시장과의 ‘월요대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

/송광룡 출판사 심미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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