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60만명 참가…지역 넘어 세계로 뻗어간 ‘호남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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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60만명 참가…지역 넘어 세계로 뻗어간 ‘호남 예술’
호남예술제 <1> ‘70년’ 의미
1956년 창설 호남 역사 담아낸 ‘예술 대제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본사 社是 ‘문화예술 창달’ 맥 이어
문학·미술·음악·무용·국악 경연…예술인 축제
2025년 04월 18일(금) 00:00
제9회(1964년) 경연 당시 동방극장(무등극장) 앞에서 경연을 관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여고생들 <광주일보 자료>
올해로 70년을 맞은 ‘호남예술제’는 광주일보가 지역 문화예술계와 함께 쌓아 올린 예술 금자탑이다. 수많은 예술인에게 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며 클래식, 미술, 문학, 무용,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예술가들을 배출해 왔다. 호남예술제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보고 경연을 거쳐간 예인들의 발자취, 앞으로의 미래를 조망해 본다.



1970년대까지 문화예술 행사가 드물었던 지역에서 ‘호남예술제’는 예술 꿈나무들의 중요한 등용문이었다. 특히 광주가 ‘예향’(藝鄕)이라는 브랜드네이밍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데는 호남예술제의 파급력을 빼놓을 수 없다.

1952년 창간한 옛 전남일보(광주일보 전신)는 창립 4년째인 1956년 새내기 예술인들을 육성하고 지역문화를 창달한다는 취지에서 첫 예술제를 시작했다. 1956년 6월 14일자 2면에 게재된 ‘제1회 호남예술제’ 개막 이틀째 기사는 첫발을 내딛었던 당시의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혹은 명주실같은 비로 혹은 호우(豪雨)로 흐렸다 개였다 걷잡을 수 없었던 전날까지의 날씨도 살짝 개어 이날따라 유난스레 드맑은 가운데 본사가 보내는 제1회의 호남예술대제전은 13일 화려한 막으로 열었다. 싹트는 어린이들의 지적향상을 꾀하고 이르러서는 호남의 향토문화발전과 한국의 문화향상에 기여하자는 원대하고도 대규모의 동(同) 예술제전은 이미 호남지방의 절대한 인기와 성원 그리고 기대를 집중시켜 그의 성과와 연면한 계속을 희원하는 소리소리에 부응하여 오늘의 개막에 이르렀거니와 이는 드맑은 신록의 6월에 본사가 보내는 일대 제전이라 않을 수 없다….”

기사는 하루 전 6월 13일 오전 10시 30분 서석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개회식을 시작으로 15일까지 사흘간 무용부(독무·군무), 음악부(독창·합창·기악), 동극(童劇) 예선과 결선 등 진행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앞서 5월에 열린 글짓기를 비롯해 사생대회에는 허백련·오지호 화백, 김현승 시인 등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대거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 척박한 문화 풍토 속에서 처음 시작된 학생 예술제전은 지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1회 대회 폐막날인 15일 음악·무용·동극 결선이 열린 동방극장(무등 시네마 전신)은 입추의 여지없는 만원을 이뤄 바깥은 입장을 못한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또한 당시 6월 17일자에 실린 ‘아동예술사에 찬연(燦然)’이라는 제목의 폐막 기사는 ‘호남예술제’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자라나는 어린이에의 기대-이번 예술제를 통하여 구김살 없는 그들의 천성과 비길 곳 없는 그들의 재능을 보고 우리는 다음 세대(世代)에 새로운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다.”

이처럼 기사는 1회 행사를 우리나라 어린이 예술운동사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평했다.

1956년부터 시작된 호남예술제는 7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며 예술 꿈나무 등용문이자 미래 예술가를 길러내는 요람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오늘에까지 이어져 온 것은 지역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문화예술 창달이라는 본사의 사시(社是)와도 맥이 닿아 있다.

그동안 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무용, 국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연이 펼쳐졌으며 참가자는 모두 60만여 명에 이른다. 팬데믹으로 현장 경연과 집합이 제한되던 시기에도 예술제를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호남 문화예술의 기수’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됐다.

호남예술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와 호남의 역사를 담아내는 ‘예술 대제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예술제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1961년 제6회 행사는 4·19 혁명 1주년을 기념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었으나, 5·16 군사 쿠데타로 인해 행사가 11월로 연기돼 개최되기도 했다.

4000여 명이 참여한 이듬해 행사는 금남로·중앙로에서 시가행진도 열렸다. 도심 한복판에 예술제를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졌고, 15회 행사 당시에는 대형 애드벌룬이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 위에 떠올라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광복 30주년 기념행사를 겸한 ‘제20회 호남예술제’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진행됐다. 전남도청 앞에서 출발한 참가자들은 다양한 분장과 옷차림으로 가두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입간판을 들고 광주 공설운동장까지 시가를 걸으며 지역민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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