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와 선물, 그리고 카드 - 채희종 디지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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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와 선물, 그리고 카드 - 채희종 디지털 본부장
2025년 03월 25일(화) 21:30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외신을 비롯한 각종 뉴스와 칼럼, 가십 등에 수시로 등장하는 단어가 아부와 선물이다. 주로 로비스트들이 정치권을 상대로 구사하거나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구애 수단 정도로 여겨지던 아부와 선물이 현재 국제정세를 대변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아부는 본질 자체가 상대의 마음을 목표로 하고, 선물은 아부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부정적 성격이 짙은 아부를 전략이나 기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는 미국 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인 리처드 스텐겔이다. 그는 저서 ‘아부의 기술’에서 아부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전략적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에 비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근본적 문제에 천착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진실 여부와 상관 없는 아부의 효과를 인정한 작가였다.

그의 장편 소설 ‘죄와 벌’에는 아부에 대한 예찬이 나온다. “아부는 절대 어느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며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모든 여성에게도 확실히 효과가 있다. 이 세상에서 정직함만큼 어려운 것이 없는 것처럼 아부보다 더 쉬운 것도 없다. 아부란 마지막 한 마디까지 모조리 거짓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좋아지고 만족감이 들 수밖에 없다. 아부는 아무리 엉성할지라도 적어도 그 속의 절반은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는 교육의 정도와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부에 약하고 아부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간파한 것처럼 오래 전부터 아부는 외교 수단으로 활용됐다.



강자 우선주의에 무너진 세계 질서

냉전시대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의 아부는 외교사에서도 압권으로 여겨진다. 키신저는 1971년 중국을 방문해 가진 저우언라이 총리와의 회담에서 “중국의 문화적 우월성에 비교하면 미국은 개발중인 신흥 국가다. (중국은) 아름답고 신비한 나라다”며 시작부터 상대를 띄웠다. 이 회담으로 양국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에 합의했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자신을 ‘각하’로 부르며 “위대한 결단과 훌륭한 리더십”을 칭찬한 북한 김정은의 편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한 것은 아부가 예외 없이 효과가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2기 외교가 미국 우선주의를 넘어 영토 확장에, 나아가 타국의 자원까지 노리는 제국주의 형태를 띠면서 아부도 극에 달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와 회담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를 ‘엄청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친구’라고 아부했으며 일본 이시바 총리는 “TV에서나 뵙던 분(트럼프)을 가까이서 뵙는다는 감동이 각별했다”고 추켜세웠다.

아부에 이은 선물 공세가 마치 ‘1+1’ 상품처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오랜 옛날부터 학습된 내용이다. 중국 후한 삼국시대에 위나라 조조가 수십 만 대군으로 주변 나라들을 위협할 때이다. 오나라 왕 손권은 촉의 유비와 연합이 절실했다. 손권은 유비가 적에게 쫓길 때에도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던 신의를 칭찬했다. 여기에 금과 은을 궤짝에 담아 건넸다. 그러자 유비는 자신에게 뇌물을 썼다며 격분했다. 이 때 손권은 “이것은 뇌물이 아니라 당신과 저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선물입니다”라고 응수한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손권의 선물을 호의로 받아들여 병사를 배불리 먹이고 전투 장비와 군마를 갖춘 끝에 손권과 연합군을 결성해 조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처럼 아부와 선물의 효과를 몰랐던(?)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미국 정상들과 회담을 하다 쫓겨나다시피 백악관을 나왔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요구했다가 밴스 미국 부통령한테 “고맙다고 말해야”한다며 아부 못한 지적을 받았고 트럼프로부터는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는 수모를 당했다. 기껏 준비해간 선물은 비쳐보이지도 못했다.



헌재판결 존중 국가리더십 회복해야

트럼프는 침략국인 러시아를 두둔하며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돈과 자원을 요구하고 있다. 깡패에게 구타당해 망신창이가 된 친구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삥’을 뜯는 더 나쁜 깡패 역을 자처하고 있으니 우리가 알던 미국은 이젠 없는 셈이다. 완력을 휘두르는 트럼프의 급변침에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트럼프는 조만간 우리에게도 완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그는 최근 상하원 연설에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지원을 하는데 한국 관세는 평균보다 4배나 높다고 공격했다. 그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탄핵 정국 혼란 속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어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면 트럼프를 위한 아부와 선물은 크게 걱정할 대목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여야와 국론이 양분된 상황에서 젤렌스키가 당한 모멸감을 막아낼 카드는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가까운 시기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지도층과 사회의 모든 세력은 헌재의 심판에 승복해야 한다. 조만간 우리는 한미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 약자에게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트럼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카드를 가져야 한다. 트럼프는 다가오고 있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살기 위해서는 싫을지라도 여·야·정이 하나된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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