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이 당연한 세상 - 윤현석 경제·행정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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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이 당연한 세상 - 윤현석 경제·행정 부국장
2025년 02월 19일(수) 00:00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40분께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 대통령의 18년 장기 독재는 이로써 막을 내렸다. 이후 김재규의 행적은 우왕좌왕했으며, 결국 전두환에게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만일 그가 면밀하게 준비를 갖춰 박정희 사후를 대비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 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야만의 시대’, 새롭게 권력을 탈취하려는 세력들은 사형 집행을 서둘렀고, 사법부는 이를 방관했다.



46년 전 10·26 거사를 다시 보니

당시 김 부장을 변호했던 강신욱 변호사의 회고록 ‘영원히 정의의 편에’가 사후 3년여 만에 출간됐다. 강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그와 5개월여 일대일 접견을 해본 결과 그가 진정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적 소의를 희생한 의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 유족들은 2020년 5월 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는데, 4년이 넘은 지난해 7월에서야 개시 여부 결정을 위한 심문기일이 열렸다.

김 부장의 수행비서관이었던 박 대령은 영화 ‘행복한 나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박 대령은 ‘미래의 참모총장감’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요직에 있으면서도 산동네의 열두 평짜리 집에 사는 등 청빈했다. 그의 두 딸이 ‘우리 아빠 살려주세요’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울부짖는 사진이 알려지기도 했는데, 박 대령은 현역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법회의 단 한 번의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 서슬퍼렀던 당시에도 졸속 재판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김 부장과 박 대령이 10·26 거사 이후 지금까지 계속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을 지 모르겠다. 김 부장과 박 대령은 재판 내내 의연하고 떳떳하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 김 부장은 최후 진술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임무와 책임이 있어도, 독재할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 없고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령 역시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비루한 대통령, 그를 추종하는 극단세력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변론이 20일 10차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안위만 돌보려는 대통령의 말과 태도, 자세를 보면서 처음에는 당혹스럽다가 이제는 씁쓸함 마저 든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 신뢰감, 논리, 정직함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2년 넘는 시간 동안 국정을 제대로 돌봤을 리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신의 명령에 따른 장관, 군사령관 등에게 거짓말을 재촉하는, 그의 비루함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를 리 없다. 굳이 순리나 이치를 따질 필요도 없이 45년만에 비상계엄에 나선 것 자체로 그는 시대를 역행한 반역·내란의 우두머리일 뿐이다. 갖가지 해명, 변명이 난무했지만 윤의 변호인들조차 그의 반헌법적 행위와 유죄를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탄핵반대집회가 지난 15일 45년 전 전두환의 비상계엄 확대 조치에 저항하며 피를 흘린 도시, 광주에서도 열렸다. 무대에 오르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라고 상식이 없거나 인지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중에는 정치인, 유명인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 무지몽매한 윤석열 대통령을 동조·추종하는 것인가. 진실을 외면하며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자신의 이익이나 욕심 등을 교묘하게 꾸며 누군가를 현혹시키는 것이 만연한 세상이다.

극단 세력이 계속 확장성을 가진다면 국론 역시 극심하게 분열돼 옳고 그름까지도 그 의미를 상실하는, 너무도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들의 방종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언어도단이나 망발이 민주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협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세상을 위해, 강력한 규제와 처벌,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46년 전 이유야 어찌됐든 군부 독재를 끝장 낸 김 부장 등 주요 인사들의 당당함, 담담함은 기억할만하다. 삼권분립이 기본인 민주공화국에서 당시 사법부의 비겁함도 잊어서는 안 된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이 어처구니 없는 비상계엄과 내란 행위에 대해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추상같은 판결을 고대한다. 그 누구도 역사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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