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들춘 법의 민낯-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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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들춘 법의 민낯- 윤영기 정치·경제담당 에디터
2025년 03월 19일(수) 00:00
광주지검 특수부 검사 윤석열. 그는 2003년 광주 모 구청의 인사 비리를 수사했다. 당시 공무원 7명이 수천 만 원대 뇌물을 주고 승진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윤 검사의 타깃은 인사권자인 구청장. 그는 금품수수 혐의로 구청장 아내를 먼저 구속했다. 당시 법조 출입기자였던 기자는 윤 검사에게 ‘둘 다 집어넣을 생각이냐’고 물었다. 답변이 투박했다. “주머니 돈이 쌈짓돈 아니요. 아내가 돈을 받았으니 남편이 모를 리 없고…일단 마누라를 집어넣었으니, 구청장이 불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요.” 지금 떠올려보면 여느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윤 검사는 구속 만능주의자였다. 일단 구속으로 피의자를 제압하고 승부를 보겠다는.



애매모호한 인신구속 기준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이 갖은 수단을 동원해 구속에서 벗어나려 몸부치는 모습은 남루했다. 온갖 법 지식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법꾸라지’(법률 미꾸라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더 가관은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그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동안 이 사건으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많이 생각났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석방된 직후 만났을 때 “구속 기간 52일 동안 많이 배웠다. 구속 기소를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구속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표변이 놀라운 뿐이다. 그가 검찰총장이었다면 석방에 불복해 즉시항고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상급심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의 친절한 안내도 반겼을 터다.

법원이 구속기간을 ‘날(日)’로 계산해온 검찰의 기준을 느닷없이 ‘시간’으로 바꿔, 하필 윤 대통령에게 적용했다는 대목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 욕받이’ 윤 대통령을 풀어준 검찰과 법원을 향한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분노에 앞서 주목해야 할 부문은 따로 있다. 검찰의 70년 실무관행이라는 이유로 덮어둘 수 없는 인권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시간으로 계산하는 게 인권보호 정신에 더 부합한다. 예컨대 영장실질심사가 20시간 정도 걸렸는데 날로 계산하다보니 실질적으로는 이틀(48시간)이 빠질 수 있다. 그만큼 구금 기간이 길어지는 셈이다. 이런 계산법으로 나와 가족이 붙잡혀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하는지 자명해진다.

헌재는 논란 차단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결정문에 선고일시를 ‘2017. 03. 10. 11:21’이라고 적시했다. 정확히 11시21분부터 헌재 판단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윤 대통령 석방은 ‘법적 시간’의 문제뿐 아니라, 사법적 통제라는 ‘형식’이 법 집행 당국의 기본권 침해를 막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대통령 권력 분산을 축으로 한 개헌 논의가 불붙고 있다. 계엄으로 한계가 드러난 ‘87년 헌법 체제’는 수명을 다했으니 새로운 공화국을 열자는 움직임이다. 개헌론에서 빠진 것이 있다. 계엄을 명시한 헌법 제 77조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서 병력으로써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이 조항에 근거해 박정희 정권은 4차례 계엄을 선포했고, 전두환은 광주시민을 학살했다.



인권·자유 제재하는 법 개선해야

윤 대통령도 ‘법률에 근거해 계엄을 선포했고 법률 위반이 아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77조 3항은 더 무시무시하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43년만에 부활한 계엄 포고령이 이 조항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벌써 잊은 듯하다.

프랑스는 혁명기인 1791년 국가 위기관리를 위해 계엄을 고안했다. 이른바 국가긴급권이다. 적의 공격시 질서유지를 위해 민간관리에게 부여된 모든 권한을 군사령관에게 이관한다고 규정했다. 일제는 1882년 프랑스를 모방해 계엄령을 제정하고 자국과 우리나라에 적용했다. 친일의 냄새를 품고 있는 그 골격이 현재 헌법에 명시된 계엄이다.

헌법 학자들은 ‘헌법이 자유의 기술이라면, 계엄은 자유를 위한 극한의 기술’이라고 정의 한다. 교묘한 언어 유희다. 국가와 국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억압·유예하고 국민을 향해 총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의미다. 왜 국민들이 인권과 자유를 아로새겨 놓은 헌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계엄과 독소조항을 문제 삼지 않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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