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 사업화로 농어촌에 활력 불어넣는 마을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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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산물 사업화로 농어촌에 활력 불어넣는 마을기업
[전남의 우수 일자리 기업을 가다]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해남 햇살영농조합법인
2024년 12월 10일(화) 19:25
순천시 별량면 대룡리에 집적되어 있는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의 공장, 사무실, 전시관 등의 모습. 2005년 고들빼기 연구 및 상품 개발에 나선 유성진 대표가 김치부터 화장품까지 다양한 상품을 개발·연구하는 거점이다.
농어촌에서 특산물 또는 체험프로그램을 사업화 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는 전남의 대표적인 마을기업들이 있다. 농어업의 가치를 간직하며, 도시민들에게 건강함을 선물하고,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해 농어업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해남의 햇살영농조합법인, 순천의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을 찾았다.

순천 별량면의 특산물 고들빼기에서 추출한 항염 성분으로 만든 샴푸, 미스트, 클린징폼크림 등 3종의 화장품이 최근 출시됐다. 19년간 고들빼기 상품 개발과 연구에 매진해온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 유성진(58) 대표는 이로써 김치부터 피클, 환, 와인, 조청에 이어 화장품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거느리게 됐다.

지난 2022년 3월 농림축산식품부 신지식농업인 474호로 지정된 그는 고문서에서 고들빼기가 몸의 독기를 제거한다는 내용을 발견하고, 순천대학교, 전남도농업기술원 등을 오가며 고들빼기의 효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유성진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 대표
유 대표는 “처음 고들빼기를 특산물로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건강기능제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20년이 다 돼 그 목표를 이루게 됐다”며 “5년 전 항염 성분이 탁월하다는 분석 결과를 건네받고 원료 추출과 관련 특허를 냈으며, 화장품 업체와 협의를 통해 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고객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는 2027년 순천 바이오헬스케어연구센터가 완공되면 화장품 연료 추출부터 제품 생산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해질 예정이어서 앞으로 이를 어떻게 마케팅해 판매망을 구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는 “피부 안정성과 관련 이미 독일 더마테스트를 통과했으며, 원료 함량을 높여 분명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했다.

유 대표가 고향(순천 서면)도 아닌 별량면으로 귀농해 고들빼기라는 작물을 선택한 배경에는 1997년 말 ‘IMF 사태’가 있다. 다니던 직장이 청산 절차를 밟으면서 일자리가 없어진 그는 포스코 협력업체로 이직했으나, 그 업체 역시 곧 문을 닫아버렸다. 실망한 유 대표는 귀농을 결심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순천시에서 운영하는 1년 코스의 ‘친환경농업대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해 시장상을 받으며 졸업한 뒤, 다시 전북 한국농수산대학이 운영하는 1년 짜리 ‘농촌관광대학’을 이수하며 총장상을 받는 등 2년을 생소했던 ‘농촌’과 ‘관광’을 배우는데만 전력을 쏟았다.

“그냥 열심히 했어요. 전혀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 이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하니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시장상, 총장상 등을 받으니까 정말 자신감이 생겼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새롭게 정착할 곳을 찾아나섰습니다.”

순천 별량면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이 어떤 작물로 체험관광프로그램을 할 지를 결정하기 위해 면사무소를 찾았다. 별량면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을 읽던 그가 발견한 것이 고들빼기였다. 별량면은 전국 고들빼기 생산량의 60%(현재 40% 수준)을 생산하고 있으며, 고들빼기의 독특한 향과 맛으로 인해 찾는 도시민들이 상당수 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대룡리 계령마을에 터를 잡은 그는 이후 고들빼기 재배와 함께 그에 대한 연구와 정부 공모사업에 집중하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오랜 과정을 거쳤다. 퇴비공장 건립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은 그는 주민 98%의 동의(30만원 출자)를 받아 법인을 만들고 토지를 구매했다. 정부 공모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마을이름에서 개랭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내 상품화하고, 순천시로부터 2억 원을 지원받아 개랭이 테마관을 지었습니다. 전남도에는 정주형 체험관광에 필요하다고 설득해 2억 원을 지원 받아 황토방도 만들었고요.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죠. 고들빼기 김치공장에서 김치, 피클 등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를 시작하면서 법인 소득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55억 원 규모의 권역단위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과 마찰이 일었고, 3년간 경찰 내사, 순천시 감사 등까지 가는 극한 갈등 속에 유 대표가 조합법인을 탈퇴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신뢰하는 24명의 조합원으로 법인을 다시 구성해 마을에 10년간 사업 이익금 중 일부를 발전기금으로 기탁하겠다고 약속한 뒤 권역단위개발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2015년에서야 법인 사업을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10년이 됩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사업체를 정비하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은 100만원부터 시작한 매출이 지난해 7억 원에 이르렀다. 올해는 15억 원 정도 예상했는데, 경기 침체 속에 8억 원에 그칠 전망이다. 화장품이라는 신상품을 출시한 만큼 마케팅에만 성공하면 파격적인 매출 상승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또 농기계 분야 중견기업인 (주)대동과 순천 재래종 고들빼기의 스마트팜 설치와 관련 협의를 진행중이다. 씨 채집부터 파종, 관리가 너무 어려운 재래종 고들빼기가 보다 쉽게 재배된다면 과거처럼 생산량을 높일 수 있어 원료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순천은 11월까지 고들빼기를 재배해 바로 김치를 담그기 때문에 사포닌, 이눌린, 베타카로틴 등의 함유량이 높습니다. 꼬들배기는 크게 강원도와 경기도에 재배되는 왕고들빼기, 이고들빼기와 전북 밑으로 재배되는 재래종이 있는데, 영양가, 효능 등의 측면에서는 재래종이 가장 뛰어납니다. (주)대동이 서울대에 용역을 발주해 재래종 꼬들배기에 대한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 기술도 제공한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순천 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의 직원은 모두 6명이다. 조합원 자녀 2명, 주민 1명 등이 근무중이다. 유 대표는 “지방소멸 문제의 유일한 대책은 마을기업이며, 농촌이 잘 살고 소득이 높으면 오지 마라고 해도 청년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스마트팜, 화장품 등은 하나의 과정일 뿐 농촌이 잘 살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고들빼기를 통한 바이오산업을 통해 조합원·주민들과 그 가치를 함께 나누겠다”고 덧붙였다.

해남 황산면 일대 120ha의 농지를 확보해 56명의 청년 조합원과 함께 농사를 지어 그 성과를 토지소유주와 나누는 방식을 도입한 해남 햇살영농조합법인의 배추밭.
지난 11월 21일 찾은 해남군 황산면은 녹색의 향연이었다. 쏟아지는 가을볕에 배추밭의 스프링쿨러가 연신 물을 뿌리고 있었다. 김장철을 맞아 수확을 앞두고 있는 이들 배추는 곧 소금에 절여져 박스 포장 상태로 전국 소비자들에게 배송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말 한 때 배추 한 포기 산지가격이 1만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드넓은 배추밭의 가치는 천문학적이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수입 배추가 대거 들어오면서 11월 중순 이후 포기당 2000원대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농부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 배추들을 열심히 씻어 절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김상석(44) 해남 햇살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농사를 지어 수확하는 부모님과 이웃들이 제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팔 수 있도록 무엇인가 하고 싶어 귀농했다”고 말했다.

김상석 해남 햇살영농조합법인 대표.
김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단 서울로 올라갔다. 귀농을 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8년간 열심히 일해 1억원을 모은 뒤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처음 혼자 농사를 지어 온라인 판매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친구와 알고 지냈던 동생 등 5명이 참여하면서 2019년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아무 것도 없지만 노동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도시·농촌 청년과 토지·농기계·농사 기술과 노하우를 가졌지만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힘든 농사일을 할 수 없는 농촌 어르신을 어떻게 하면 상호 만족시켜 농촌에서 상생하게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했다.

“사실 귀농하는 청년 상당수는 대출 받아 집, 농기계를 사는데, 처음 몇 년간 제대로 농사를 못지어 빛 갚는데 허덕입니다. 농촌 어르신들은 생산액의 20%도 안 되는 임대료 받고 농지를 빌려주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농기계는 마당 한구석에서 놀고 있죠. 그래서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청년들과 농지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7대3으로 나누자고 제안했어요. 대신 농기계도 빌려주고, 농사 기술도 전수해주시라고 했죠.”

김 대표의 이 방법은 예상 밖의 큰 효과를 냈다. 조합원은 56명으로 늘어났고, 토지를 맡기는 어르신은 황산면에만 42명에 달했다. 농지 면적은 120ha이다. 처음 일부 조합원들이 키우기 쉽고, 돈 되는 작물만 고집했지만, 이제 조합에서 함께 거래하고 조합원 개개인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그런 ‘이기심’도 사라졌다. 작물마다 최저 가격 보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작물 가격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조합 수수료를 포기하고, 직거래를 하도록 해 토지 소유 어르신과 임대 청년의 수익을 높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토지 소유 어르신들이 청년들에게 수익의 50%를 건네고, 명절에 소고기, 전복 등 각종 ‘선물 공세’를 하는 등 관계가 보다 끈끈해졌다.

“배추를 뽑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청년에게 조합에 가입하면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하나 둘 늘어난 것이 여기까지 왔어요. 가입비, 절차도 필요 없으니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벼농사를 기본적으로 하면서 보리, 밀, 콩, 감자, 고추, 배추 등 모든 농산물을 취급합니다. 온라인으로 고객들이 요청하면 당연히 상품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작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 고객은 12만4000여명에 달한다. 홍감자(붉은 감자)가 ‘대박’을 쳐 네이버 쇼핑몰의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고정 고객이 급증했다. 처음 200평에서 시작해 현재 50만평에 이르는 홍감자 밭에서 나오는 엄청난 물량이 순식간에 팔려나갈 정도다. 덩달아 다른 농산물들도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매출 16억8000만원, 올해는 2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홍감자를 처음 시장에 내놨을 때는 별로 인기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연구하면서 맛이 좀 나아지는 것 같더니 지난 2021년부터 잘 나가기 시작했어요. 5월 시작되는 홍감자 수확철에는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얼굴보기도 어려워요. 그런데 조합의 올해 수익은 2억 원도 안 될 겁니다. 조합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조합원, 농민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법인이 잘 돌아가면서 마을 공동체도 어느 때보다 돈독해지고 있다. 청년은 어르신을 모시고, 어르신들은 청년들을 아껴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조합에 가입한 청년들은 조합을 통해 최저 3,000만~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다른 일도 보면서 농촌에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다. 법인은 밭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거나 대규모 고추건조기를 설치하는 등 밭을 기름지게 하고, 고부가가치화에 필요한 일들도 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여러 도움을 받았지만, 아직도 미흡한 측면이 있습니다. 법인이 확보하고 있는 12만4,000명 이상의 전국 고객을 상대로 어떤 상품을 만들어 팔 것인지를 꾸준히 고민하고 있는데, 모두 함께 의논하니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는 최근 온라인 고객 설문조사를 통해 간편하게 2~3명 또는 1명이 한 번 식사할 수 있는 양으로 소포장된 쌀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아내, 동료 등과 상품 개발에 나섰다. 그동안의 거래에서 신뢰를 쌓은 소비자들인만큼 신규 상품에도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2024년 모두애마을기업을 선정하는 공모에 참여해 심사를 받는데, 햇썹시설을 갖춰 수출까지하는 다른 마을기업들의 화려한 실적에 기가 좀 눌렸어요. 그런데 저희 법인이 선정된 겁니다. 압도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우리의 시스템이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법인을 시작할 때도 지금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엄청 고생하는 농민들이 노년에도 편하게 사셨으면, 지역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끝>

/윤현석 기자 chadol@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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