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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된 오월 희생자들 ‘씻김굿’으로 위무하다
지난 18~19일 5·18 민주광장서 펼쳐진 ‘언젠가 봄날에’리뷰
5·18 행방불명자 문제 극화…‘씻김굿’, ‘진혼무’로 영령 위무
2024년 05월 23일(목) 11:20
한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5월 영령들을 찾아온 저승사자들. 5월 영령들은 코를 막고 숨까지 참으며 저승의 차사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근디 여 대못 니가 죽음서 박아놓고 간 요 대못. 요것땀세 내가 못날아가야. 요 대못이 보상을 받는다고 뽑힐거이냐, 유공자가 된다고 뽑힐거이냐.”

지난 18~1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민주광장에서 펼쳐진 마당극 ‘언젠가 봄날에’ 마지막 장면. 5·18 당시 행방불명자가 돼 구천을 떠돌던 아들 ‘호석’을 안고 늙은 무당 ‘박조금’이 한을 풀어내기 시작하자 현장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중장년층 관객들은 가슴 아픈 장면이 나올 때마다 쓴 기침을 삼키거나 쉰 소리를 냈다. 장례를 할 때 곡성이 끊기지 않도록 소리 내는 곡비(哭婢)인 양, 나름의 방식으로 작은 슬픔을 더하는 모양새다. 물론 극화된 장면이지만 행방불명된 아들 영혼이 어머니와 재회하는 장면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언젠가 봄날에’는 창단 40주년이 넘은 광주 전통연희극단 ‘놀이패 신명’의 오월 창작 마당극이다. 2010년 초연한 뒤 10여 년 넘게 지역민의 입소문을 탄 흥행작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일부터 27일까지 행방불명된 이들을 초점화했다. 남기성이 연출했으며 박조금 역에 지정남 배우가 맡았다. 백구두(김호준), 최호석(고동민), 정옥(노은지) 등이 출연.

공연은 광주에 남겨져 있는 5·18 진상규명 문제를 환기하는 동시에 현재화한다. ‘행방불명자(행불자)’ 문제가 바로 그것, 최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조사를 통해 5·18 당시 행방불명자를 총 179명으로 확정했다. 불과 2년 전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암매장됐던 유골이 42년만에 발견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아울러 정부는 그동안 ‘행방불명 보상신청’을 통해 접수한 242건 가운데 85명만 행불자로 인정해 왔으나, 최근 조사로 94명을 추가 인정했다. 이처럼 44년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행불자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무당 박조금이 살풀이를 통해 5월 영령들을 위무하는 ‘살풀이’ 장면.
한편 공연은 박조금의 살풀이하듯한 곡소리와 허밍, 북소리로 시작해 빠른 템포로 전개됐다. 굿판을 끝내고 쉬고 있던 박조금 주변에 44년간 이승을 떠돌고 있는 ‘백구두’, ‘여학생’, ‘시민군’ 영혼들이 몰려 든다. 이들을 저승으로 데려가야 하는 저승사자들은 몰래 숨어있던 영혼을 찾아내며 “‘발설지옥’으로 떨어뜨리겠다”고 협박하면서 저승으로 돌아갈 것을 회유한다.

행방불명자 영혼들은 영면에 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원통함, 신군부에 대한 진노가 이들의 혼을 구천에 남아있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위트와 코미디, 해학이 가득한 공연이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먹먹하다.

행불자가 된 아들을 기다리던 박조금이 저승사자에게 “아들을 찾아 달라”며 으름장을 놓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공포의 존재인 저승의 차사에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박조금의 모습은 자식을 여읜 부모의 한, 5·18에 대한 광주의 사무치는 마음을 유비적으로 드러냈다.

무당 박조금이 아들 호석이를 안고 진혼하는 장면. <놀이패 신명 제공>
“여기가 명당이라. 좌우를 살펴보니 그러지라 ‘갈마음수성’이라, 목마른 말이 물 먹는 성국이요. 노기화전 늙은 쥐 만곡을 내려다보고 웃고 내려오는 성국이요. 서남간을 바라보니 노적봉이 비쳤으니 오늘오신 벗님네들 벌고 살기 충분하겠소.”

극중에는 무당의 열두 굿거리 중 하나인 제석굿도 들을 수 있다. 진도 토박이들이 상을 당하면 당골 무당을 불러 펼치는 ‘씻김굿’으로 5·18의 의미와도 접맥한다. 드문드문 들려오는 사투리, 1980년 그날의 긴박함을 드러내는 진돗개 경보 등은 짧은 러닝타임에도 긴장감을 선사했다. 단원들이 단체로 나와 ‘진혼무’를 펼치거나 계엄군을 피해 도망치는 시민군의 모습을 재연하는 장면 등도 실감 났다.

이날 공연은 박조금이 “애썼다. 인자 맘 풀고 가자와, 그때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니도 나도 헐만큼 했다”며 아들을 안아주는 장면 등으로 마무리된다. 늙은 무당은 “그보듬 얼마다 뭣을 더 하것냐”며 구수한 사투리로 호석이에게 ‘애썼다’고 말하는 대목은 오랫동안 여운을 준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