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30년] “4대 전적지 돌며 동학 유일 여장군 ‘이소사’ 무대 올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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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130년] “4대 전적지 돌며 동학 유일 여장군 ‘이소사’ 무대 올리고 싶어”
창작극 통해 ‘동학’ 알리는 사람들 - 문화공감 에움
<정읍 황토현·공주 우금치·장성 황룡강·장흥 석대들>
서혜린·서기영 제작기획 음악창작극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사 바탕
장흥 출신 이소사·소년장수 등
장흥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담아
2024년 02월 27일(화) 20:05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를 탄생시킨 장흥 문화공감 에움 서혜린 대표(왼쪽)와 창작공간 해우 서기영 대표.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열 아들 못지않은 장군의 외동딸/ 미색 출중한 현모양처 조신한 규수 그딴 거 필요없네/ 분첩보다 검이 좋고 바느질보다 격투가 재미나네(이소사)//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돈 많고 자식 귀한 향반집 장손/ 평생 일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귀찮은 일 필요없네/ 쟁기질 대신 말 타고 철철이 비단옷에 호의호식(김양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운 좋게 면천한 노비의 핏줄/ 평생 일만 하다 병들어 죽은 아비처럼 살 필요없네/ 상전의 아들과 벗이 되고 양반의 딸과 검술을 하네(임덕술)// 누가 널 데려갈까 누가 널 데려가 누가 날 데려가긴 누가 날 데려가/ 데려가지 않아도 따라갈 수 있고 떠나버린 뒤에도 기다릴 수 있네/ 벗이로세, 우정이로세, 의리로세.’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중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난해말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된 음악창작극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문화공감 에움 제공>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많은 눈이 내렸다. 마침 이날은 장흥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이 있는 날. 시골마을에서 하는 작은 공연에, 더구나 많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객석이 얼마나 찰지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장흥 군민은 물론 안동, 정읍,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달려와 주었다. 배우들은 열의를 다해 연기를 했고 관객들은 무대가 끝나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장흥에서 이런 멋진 공연을 볼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는 답을 해주기도 했다.

폭설을 이겨내고 많은 이들을 불러 모은 공연은 문화공감 에움(대표 서혜린)이 제작하고 창작공간 해우(대표 서기영)가 기획한 음악창작극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였다.

비록 혁명은 실패했지만 항일의병 탄생의 토대가 된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사를 바탕으로 장흥 출신 동학농민군인 이소사와 소년장수 등 평범한 백성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투쟁에 나섰던 장흥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극이다. 국악기를 중심으로 한 17곡의 음악과 함께 연출한 퓨전 창극 형식을 갖추고 있다.

“‘왜 이소사였나’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동학농민혁명의 4대 전적지가 있습니다. 전북 정읍의 황토현, 충남 공주 우금치, 전남 장성 황룡강, 장흥 석대들이에요. 전남은 두 곳의 전적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장성과 장흥 이 두 곳을 누비면서 동학농민혁명사 전체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장군이 이소사 였습니다.”

서혜린 대표는 “‘소사’는 이름이 아니다”며 “소사(召史)는 과거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이었는데, 이씨 성을 가진 결혼한 여성이라고 해서 ‘이소사’라고 불리었다”고 전했다.

목판화가 박홍규 작가가 그린 여동학 이소사의 모습. <박홍규 제공>
“정확한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물 두 살의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경성지색(傾城之色)의 미모를 가지고 있는 이가 농민군의 선봉에서 마상지휘를 하며 농민군을 이끌었어요. 그 당시에 여성이 말을 탔다는 것만으로도 시대적으로 매우 용맹했다는 거죠. 항일운동사를 보면 우리는 가장 알려진 유관순 열사를 항일운동의 선봉이라고 하지만 1894년의 이소사는 이보다 30년 앞서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실존한 인물이라는 거지요.”

장흥 석대들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894년 12월 장흥읍 석대들에서 동학농민군 3만명과 일본군과 조선 관군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갑오년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2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왔다.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을 이끈 선봉장이 이소사였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이 여전사의 기록은 당시 농민군을 토벌하던 조선의 관군 우선봉장 이두황이 일본군 대대장 남소사랑에게 보낸 편지(1895년 1월 1일·우선봉일기)에 기록돼 있다.

‘거괴 체포자를 나주로 호송이 가능하냐고 했는데, 이 역시 그렇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백성이 처형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교령이 오고 있을 때는 민인이 체포하여 바친 여동학 1명을 소모관 백낙중이 받았습니다. 소모관에게 넘어가 매를 맞는 문초를 당해 살과 가죽이 진창이 되어 있으며, 교령을 받았을 때는 기운과 호흡이 헐떡거려 생명이 얼마 남지 않는 모양입니다. 조금 늦추는 것을 용인하여 이에 안정되면 여동학을 본부로 압송하겠습니다.’(위의환 향토사학자의 연구 문헌 중 일부 발췌)

이소사가 관군에 체포된 후 매에 맞아 온몸의 살이 문드러져 목숨이 거의 끊기자 관군이 남편을 수소문해 간호하도록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남편이 도착해 데려갔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보아 고문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호송된 나주 감옥에서 죽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장흥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온 ‘문화공감 에움’ 서혜린 대표는 동학농민사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이 여성을 부각시킬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음악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준비기간만 4년이었다. 2020년 농민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홍규 화백과의 만남이 시작이었다.

“4년 전 목판화가 박홍규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건네받은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사』라는 3권의 책을 접하면서 저희의 과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장흥은 동학농민혁명의 최후의 격전지였습니다.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처참하게 도륙되던 뼈아픈 역사 속에서 여성으로서 마상지휘하며 농민군을 이끌었던 이소사를 세상에 더 많이 알리는 것은 문화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저희에게 숙명이었습니다.”

서 대표는 창작공간 해우 서기영 대표와 함께 2021년 처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모사업을 통해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음악영상물을 만들었다. 무연고 농민군들이 안장돼 있는 제암산 묘역과 말을 타고 석대들을 내달리던 이소사의 총명하고 용맹한 모습에 음악을 입혀 영상을 제작했다.

이후 프로젝트 팀을 구성해서 본격적인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2022년 전남문화재단의 공모사업을 통해 희곡 작업을 완성하고 장흥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기념식 당시 사전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2023 전남 문화예술 브랜드육성사업’을 통해 공모사업으로 동명의 음악창작극을 처음 무대에 올리는 성과를 보였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가장 먼저 제암산 동학농민혁명군묘역을 찾아갔습니다. 창작진과 함께 참배를 하고 인사를 드리고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장흥문예회관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출연진과 제작진. <문화공감 에움 제공>
6개월이라는 짧은 제작기간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도 많았다. 연습공간이 마땅치 않아 무안, 화순, 광주를 전전하며 공연 연습을 하곤 했다.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배우들도 각지에 떨어져 있다 보니 모두 모이는 게 어려웠다.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이동을 했고 마지막에 장흥 문화예술회관에 모여 리허설을 하면서 쉽지 않은 공연 준비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에움과 해우가 기획 제작하고 연출했지만 공연은 장흥 군민 모두와 역사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힘이 모아져 탄생했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사실 예산이 많이 부족했어요. 러닝타임 2시간에 출연진이 70여 명이었어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연기자들에게 줄 수 있는 예산이 한정적이었지만 그 분들의 선한 마음 덕에 무사히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이 모여지다보니 좋은 작품이 탄생된 거에요.”

서혜린·서기영 대표는 올해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해 4대 접전지를 돌며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 공연을 올려보고 싶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뜻을 전달하고 여러 공모사업에도 문을 두드려보고 있다. 쉽지 않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두 대표의 굳은 의지다.

“4대 전적지 투어가 올해 목표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최소한 두 곳에서는 공연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여러 공모전에 신청하고 있어요. 2025년에는 서울 광화문 옆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 많은 분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은 ‘영웅’처럼 여장군 이소사와 장흥 농민군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창작극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악창작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들의 바람처럼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이 되는 올해 어딘가에 무대에서 다시 한번 ‘석대들을 내달린 아름다운 꽃 이소사’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다려본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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