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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격(言格)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3년 11월 30일(목) 22:00
인간은 언어를 통해 인식하고 언어로 기억하며 언어로 생각한다. 우리는 언어의 틀에 의해서만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인간은 언어의 집 에 산다”고 말했다.

사람이나 사물에는 이름이 있고 우리는 그 이름을 통해 존재를 이해한다.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모르면 그 존재를 인식할 수가 없다. ‘코끼리’라는 언어를 모르면서 ‘코끼리’라는 동물을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김춘수의 시 ‘꽃’은 이러한 존재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나와 관계를 맺으며 ‘꽃’이 되듯이 인간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고 소통하는 도구가 바로 언어다.

한 사람이 쓰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품격과 됨됨이를 짐작할 수 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은 ‘존재의 집’이라는 시를 통해 말(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이 맑고 고요하면/ 말도 맑고 고요하게 나온다/ 생각이 야비하거나 거칠면/ 말도 또한 거칠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말로써/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말을/ 존재의 집이라고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고 말했다. 내가 모르는 단어에 존재하는 세계는 알 수가 없다. 언어의 크기가 생각의 크기이고 내 언어의 수준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라는 의미다.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언어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타인을 비난할 때 그 부모까지 끌어들이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유권자는 정당의 정책보다 정치인들의 발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욕설이나 비속어는 사람을 직접 평가하기 좋은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그가 쓰고 있는 언어를 보면 된다. 언어의 레벨이 인생의 레벨이고 언격(言格)이 곧 인격(人格)이다.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jkyou@kwangju.co.kr